올레 헨리크 마르틴 안데르베리 (스웨덴어 : Olle Henrik Martin Anderberg , 1919년 9월 13일 ~2003년 9월 26일 )는 스웨덴 의 레슬링 선수이다.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모두 국제 경기 경험이 있으며, 올림픽 에서 자유형 금메달, 그레코로만형 은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하였다.
생애와 경력
1946년 스웨덴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헬게 라우티 와 경기를 하고 있는 안데르베리.
스코네주 의 도시인 란스크로나시 의 아스문드토르프 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1931년 에 레슬링 과 체조 를 배웠으며, 후에 에스킬스투나 로 건너가 레슬링을 전문적으로 수련하며 레슬링을 자신의 전공 스포츠로 골랐다.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을 번갈아가며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 끝난 후인 1946년 에 스웨덴 레슬링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그 해 10월에 모국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에서 열린 유럽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 참가하여 -62kg급에서 튀르키예 의 가잔페르 빌게 의 뒤를 이어 자신의 첫 국제 대회 메달인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 4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의 프라하 에서 열린 유럽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서 헝가리 의 토트 페렌츠 를 꺾고 62kg급에서 자신의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48년 8월에는 영국 런던 에서 열린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처음 열린 하계 올림픽 에 스웨덴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그레코로만형 -62kg급에 출전하였다. 안데르베리는 첫 상대인 오스트리아 의 게오르크 바이트너 를 상대로 테크니털컬 폴승을 거두었고 다음 상대인 튀르키예 의 메흐메트 옥타브 에게는 자신의 대회 유일한 패배를 당하였다. 이후 핀란드 의 에르키 탈로셀라 와 이탈리아 의 루이지 캄파넬라 , 헝가리의 토트를 모두 꺾었으나 옥타브에게 당한 패배로 인해 그의 뒤를 이어 2위를 하였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49년 6월에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에서 열린 유럽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 참가하여 이란 의 하산 사디안 과 튀르키예의 누레틴 자페르 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0년 3월에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 참가하여 레바논 의 사피 타하 와 이집트 의 사예드 칸딜 을 누르고 우승하였다. 이듬 해인 1951년 4월에는 핀란드 헬싱키 에서 열린 1세계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서 이탈리아의 가리발도 니촐라 와 튀르키예의 이브라힘 젱긴 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1952년 7월에는 헬싱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에 참가하여 자유형 -67kg급에 출전하였다. 안데르베리는 첫 상대인 소련 의 아르메나크 얄티랸 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의 니촐라, 벨기에 의 얀 콜스 , 일본 의 시모토리 다케오 , 이란의 토피그 자한바흐트 , 미국 의 토미 에번스 을 모두 꺾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은메달은 에번스, 동메달은 자한바흐트에게 돌아갔다. 1953년 3월에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에서 열린 세계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트리파 와 레바논의 엘리 나산 을 누르고 우승을 했으며, 1954년 5월에 일본 도쿄 에서 열린 세계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 에 참가하여 이란의 자한바흐트의 뒤를 이어 2위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56년 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의 멜버른 에서 열린 자신의 3번째 올림픽이자 마지막 국제대회에 참가하였으며, 이 대회에는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종목에 모두 출전하였다. 처음 출전한 종목은 자유형으로 첫 상대인 이란의 에맘알리 하바비 에게 패하고 핀란드의 배이노 하카라이넨 을 꺾었으나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그레코로만형 경기에도 출전했으나 첫 상대인 불가리아 의 디미터르 스토야노프 에게 패하여 탈락하였다.
은퇴 후인 1950년대에는 이란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냈으며, 2003년 9월에 스웨덴의 린셰핑 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9년에 국제 레슬링 연맹 (FILA) 명예의 전당 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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