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석(吳天錫, 1901년 ∼ 1987년)은 대한민국 제8대 문교부 장관이자 교육학자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천원(天園)이며,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1932년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강연·논문 등으로 한국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힘썼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국 상해로 피신하였다.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교육활동을 재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청 문교부 차장·부장을 역임하면서 일제에 빼앗겼던 한국교육을 민주주의 초석 위에 재정립하는 일에 주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특히 교육계 원로들로 구성된 교육위원회를 조직하여 홍익인간의 교육목적 설정, 6·3·3·4제의 기간학제 제정, 국립서울대학교 창설 등을 주도하였고, 민주주의와 아동존중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새교육운동을 추진하였다. 이후 대한교육연합회장, 한국교육학회장,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 제2공화국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교육대학 신설, 향토학교운동, 교과서 개편 등을 통하여 교육민주화를 추진하였다.
1987년 “나는 내 조국의 민주교육을 위하여 살고 일하다 가노라.”라는 말을 남기고 작고하였으며, 그의 장례는 한국초유의 교육인장으로 거행되었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