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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감(楊玄感, ? ~ 613년)은 중국수나라 때 활약했던 정치가이자 무장이다. 수나라 조정에서 절대적인 권세를 떨쳤던 재상양소의 맏아들로, 수 양제가 그의 아버지를 꺼려하고 시기하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매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613년, 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고 있었을 때, 동도(東都) 낙양 근처의 여양(黎陽. 현 허난성쉰 현)에서 이밀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반란은 곧 진압되었다. 양제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했다.
생애
양소의 아들로 그의 작위를 세습받아 초국공(楚國公)이 되었으며, 영주자사(靈州刺使),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하였다. 대업 9년 수 양제(隋 煬帝)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 여양(黎陽)에 주둔하여 군량운반을 감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천하를 위해 현이 기우는 위험을 제거하고 여원(黎元)의 운명을 구한다"는 구호 아래 병사를 일으켜 수나라에 모반을 하고 10만여명을 이끌고 낙양(洛陽)을 포위하였으나 한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는 서진하여 관중을 취하려고 하였으나 수나라 병사들의 추격을 받고 실의에 빠져 자살하였고 그의 시체는 낙양 거리에서 3일동안 효수된 채로 방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