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申正一, Shin Jeong-yil, Shin Jeongyil, 1938년 6월 13일 ~ 1999년 4월 5일)은 대한민국의 종교인,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다.[1] 한얼교의 창시자인 그는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다.[2]
1938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는 경북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경북대 법학과와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4] 1965년 한얼사상을 정립하여 한얼교를 창시했고[5] 초기에는`정일회(正一會)'로 출발했으나[6] 1978년 한얼교로 개명했다.[7] 이후 한온그룹 경영,[8] 대통령 선거 출마,[9] 동양문화신문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10]
1965년 정각묘득을 이룬 신정일이 한얼과 바름을 설법하며 대중 교화를 시작한 것이 한얼교 탄생의 계기가 되었고[7] 전국 각지에 지부가 생겨났다.[11] 1967년 대한민국 문공부로부터 정식 종교단체 사단법인 정일회로 인가 받아 설립했고[12] 1978년 '한교선언'을 통해 현재의 한얼교로 개명 후 오늘날에 이르렀다.[13]
1980년 10월 21일 '한의 원리'선포식에서[14] 그동안 체계화시킨 한사상을 발표했다.[15]
"내얼이 한얼이다"는 가르침을 전하며 자신의 본성인 '나얼'을 깨닫고 각성하여 만물의 본성인 '한얼'과 하나되어 진리를 실천하는 법을 설파했다.[12]
1983년 6월 근로농민당(당명 변경 전 민주농민당) 명예총재에[16] 취임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17] 1987년 '한주의 정치 선언'과 함께[18] '한주의 통일한국당'을 창당하여[19]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한주의 통일한국당 대통령 후보로[20] 출마해[21][22] 한사상을 설파하고[23] 한주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낙선하였다.[24]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한 차례 통일한국당 대통령 후보로[25] 출마해[26] 남북 평화와 민족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또다시 낙선하였다.[27]
신기술, 신소재, 에너지 위주의[28] 23개의 계열사를 둔 한온그룹 창업주로 기업경영.[29] 특히 한온그룹의 모회사인 ㈜한얼상사는[30] 1994년 이라크 거대 유전 광구의 개발권 확보에 성공해[31] 삼성물산, 석유개발공사, ㈜SK와 컨서시움을 구성해 간사회사로 활동했다.[32]
199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John F. Kennedy school Institute of Politics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중한론>[33]이라는 남북통일의[28] 신기능주의적 정치외교 학설을 발표했고 미국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을[34] 포함 세계적으로 여러 중요 정치인사들과 회담했다.[35] 남북한 군사적 완충지대에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중립국가를 공동 운영하여 정치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며 통일을 촉진하자는 그의 <중한론>은 당시에는 큰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나 신정일 타계 후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이 이뤄지며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36]
대한민국의 석유자원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이라크와의 경제협력과 민간외교 차원에서 이뤄진[37] 의료지원과 인도주의적 외교활동의 결과로[31]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이라크와 한국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총명예영사로[38] 임명되었다.[39]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10년 전부터 이미 중국과의 우호관계의 초석을 다져왔고 백두산에 그 업적을 기리는 산문 공덕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며[40] 그 외 스웨덴, 프랑스,브리아티아, 러시아, 브루나이, 필리핀[35] 등 여러 국가와 주요 인사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펼쳤다.[41]
1997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42] 영국 옥스포드대학 Harris Manchester Foundation Fellow[43]로 임명되었다.[44][45]
한얼교와 함께 한사상연구소를[46] 설립했고[47] 1971년 도서출판 정화사 대표로 취임, 1993년에는 <동양문화신문> 창간,[29] 1998년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 우슈협회' 회장[48]으로 취임,[49] 의료법인설립 등,[4] 사회[50] 체육[51] 언론 교육[52] 문화[53]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54] 그의 활동의 핵심은 한얼사상과 철학이 종교적 신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등 다방면에 적용되어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새로운 정신문화와 인류의식진화의 초석을 제시하기 위함 이었다고 한다.[55]
1999년 4월 5일 사망하였다.[29] 열반 후 유골에서 여러 과의 진신사리와[56] 최초의 진모사리, 28과의 치사리가 발견되었다.[57]
2015년 한얼교는 창교 50년을 맞이하여 창시자 신정일의 사리 친견과 한얼말씀 판각본을 전시하는 공식 행사를 가졌으며 한얼교 본원 재건립을 통해 반백년 역사를 기념했다고 한다.[58]
이상[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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