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星州 李氏)는 경상북도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시조인 이순유(李純由)는 경순왕(敬順王ㆍ927~935년) 재위 기간에 재상(宰相)의 지위에 올랐다. 성주 이씨 대동보에 의하면, 이순유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더불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순유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슬하에 다섯 아들 중 장남 밀직사사(密直司事) 이백년(李百年), 이남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천년(李千年), 삼남 문하시중(門下侍中) 이만년(李萬年), 사남 개성유수(開城留守) 이억년(李億年), 오남 정당문학 문열공(政堂文學 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그에게 특별히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이장경의 손 이천년(李千年)의 둘째 아들 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며 공적을 세워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농서 이씨라고도 하였다.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이 그의 후손이었다.
이장경으로부터 후손들이 명문 세도 가문으로 거듭나므로 성주이씨는 그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후대 8世 이내에 문형(文衡 - 대제학)이 18명, 봉작을 받은 이가 11명, 상신(相臣 - 정승)이 15명, 또 식읍을 받은 이가 5명, 부마가 2명, 문과 급제자가 75명이다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 육가야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인데, 신라때 본피현이라 하다가 757년에 신안현으로 개칭하여 성산군에 속하였다.
그 후 벽진군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로 개칭하였다가 경종 때 광평군이 되었으나, 그 후 여러차례 변천을 거쳐 인조 때 성산현이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에 성주군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