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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과 재야

스스로 재야사학을 자처하는 부류들은 역사학자를 일컬어 '강단(講壇)'이라 부른다. 이로 인해 세간에는 역사학계라고 하는 커다란 차원의 존재가 마치 강단과 재야로 나뉘어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재야를 자처하는 부류들은 학자도 아니고, 재야사학이라는 것 역시 학문이 아니다. 재야사학과 같은 부류는 의사 역사학이다. 말 그대로 가짜 역사학이며, 학문 자체가 아니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세계 과학계가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로 나뉘는 것일까? 그럴리가. 진화론이라는 과학 이론이 있고, 창조론이라는 의사과학 - 말 그대로 가짜 과학 - 이 있는 것 뿐이다. 가짜 과학은 과학계를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계의 반대항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을 마치 학자이고 학문인양 포장하고 기생하는 것이다. 재야사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재야는 사학계를 양분하는 양대 산맥 중 하나가 아니라, 사학계에 기생하는 기생충일 뿐이다.

재야의 강단에 대한 공격

재야라는 부류들은 학문적 성과를 통해서 역사학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정통 역사학계를 공격하고 폄하함으로써 스스로의 위상을 획득하려 한다. 그러한 주장의 가장 대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친일파, 식민사학자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재야가 행하는 역사학계에 대한 공격의 스펙트럼은 크게 아래 예시와 같다.

  • 정통 역사학계는 친일파 출신의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제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들의 주장은 식민사학의 잔재이다.
  • 정통 역사학계는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이 불태우고 왜곡한 자료 또는 사대주의자 및 중국에서 불태우고 왜곡한 자료만 보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이다.
  • 정통 역사학계는 이병도와 같은 식민사학자의 제자들로, 스승의 주장을 신봉하기 때문에 스승의 주장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환단고기》와 같은 민족의 역사서를 위서(僞書)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재야의 공격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채용한 것일 뿐이다.

  • 재야사학의 주요 이론 및 저서들은 대부분 친일파 출신이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또한 그 내용 대부분이 일제시대 일본 극우파의 위사(僞史)를 베낀 것이다. 즉, 재야사학이야말로 진정한 식민사학, 황국사관의 잔재이다.
  • 재야사학이 사용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근대에 이르러서 등장한 위서이다. 또는 《사기》, 《삼국지》와 같은 중국의 역사서를 이용하기도 하나 사료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유리한 것은 맞는 것이고 불리한 내용은 중국의 왜곡이라 보기 때문에 대부분 신용할 수 없다.
  • 재야사학의 이론은 대부분 문정창, 이유립 등이 날조해 낸 것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금과옥조로 여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론은 모조리 식민사학이나 사대주의, 동북공정 등으로 매도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재야사학의 이론, 특히 정통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박하는 이론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신중히 검토를 할 경우 대부분 손쉽게 그 오류와 왜곡을 잡아낼 수 있다.

소위 재야사학의 문제

재야라는 부류들이 주장하는 역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한민족(동이, 대동이, 쥬신 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했고 위대한 민족이었다. 또는 한민족은 인류 문명의 시초이다. 또는 인류의 시초는 한민족이다.
  • 한민족은 고대에 만주를 지배한 강대국이었다. 또는 중국 대륙 전체를 지배한 강대국이었다.
  • 중국의 한족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모든 민족은 한민족이다.
  • 이렇게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두려워한 중국은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왜곡된 기록을 해 왔다.
  • 이렇게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해 일제는 중국과 한국의 수많은 역사책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왜곡하였다.

각각의 주장 자체가 서로 상충한다는 기초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상과 같은 소위 재야의 주장들은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주장 자체의 신빙성이나 진실성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들의 주장으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두 가지이다.

  • 패배주의 : 고대의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지만 지금의 한민족은 친일파와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쪼그라들어 형편없다.
  • 국수적 팽창주의 : 중국 대륙의 저 땅들은 모두 우리 민족의 땅이니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 또는 우리의 옛 땅을 차지하고 있는 저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이것은 1930년대 독일과 일본에서 나타나 전 세계를 전쟁의 업화로 몰아넣었던 나치즘-전체주의의 재현과 다를 바 없다. 유럽의 대평원이 아리아인에게 약속된 땅이라 외치며 유태인 수백만 명을 학살하였던 나치의 만행, 덴노의 영광을 위해 광신적인 돌격을 거듭하던 일제의 망령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허황된 생각일 뿐일까? 이들에게 현실적인 권력이 없다면 그저 자위(自慰) 행위에 불과할 테지만, 혹시라도 이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전 국민을 아수라장으로 빠뜨릴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에서는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일이다. 국가 권력이 역사학에 개입하여 신화를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 중국 역사학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역사학계는 세계 역사학계에서 말 그대로 병신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중국의 시민들이 그릇된 국수주의에 빠져들어 위험한 선택을 하기라도 한다면 세상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재야사학이 가진 최대 규모의 역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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