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후, 옛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다시 식민지화 하려던 프랑스는 독립을 목표로 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과의 전면적인 전쟁(인도차이나 전쟁)에 직면하여 장기화 국면에 빠져들었다. 프랑스는 사태 개선을 위해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호찌민 대신 베트남의 교섭 대표를 요구해 최종적으로 홍콩에 망명하고 있던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를 베트남국의 원수로 옹립하기로 했다.
이 바오다이를 황제로 하는 베트남국 건국 움직임은 베트남 노동당 주도의 베트남 민주공화국에 반감을 가진 반공 지식인이나 반공 민족주의자, 응우옌 시대의 관리나 남부 베트남의 여러 종교 단체 등에서 지지를 얻게 되었다. 1948년 베트남의 여러 세력과 프랑스가 절충을 한 결과, 같은 해 5월 27일에 잠정 정부로서 베트남 임시 중앙정부를 설립했다. 그 후, 1949년 3월 바오다이는 프랑스-베트남 협정을 체결하여, 같은 해 6월 14일에 정식적 《베트남국》이 설립했다. 또 프랑스 의회와 코친차이나 공화국 의회가 자치를 전제로 해서 코친차이나 공화국의 베트남국 편입을 결의했기 때문에 베트남은 베트남국에 의해서 전 국토가 형식적으로 통일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베트남이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1954년제네바 협정에 의해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할되고 나서 북위 17 도선의 남쪽을 통치하는 국가가 되었다. 동시에 바오다이의 후원자였던 프랑스도 베트남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1955년에 바오 다이는 원수의 자리를 응오딘지엠에게 넘겨주게 된다. 같은 해 베트남 공화국이 수립되자 동시에 베트남국은 소멸하였다.
정치
베트남 임시 중앙 정부 (1948 ~ 1949년)
1948년 5월 27일 코친차이나 공화국의 대통령 르반 호아와 총리 응우옌반쑤언은 프랑스와 미국 등의 동의 하에 베트남 임시 중앙 정부를 세우고 코친차이나 공화국과 베트남국 임시정부(베트남 중부 지역)에 대한 통일을 선언하였다. 중앙 임시 정부의 지도자는 코친차이나의 총리였던 응우옌반쑤언을 선발했다.
1949년 6월 14일 프랑스 등의 후원하에 정식으로 베트남국이 건국하면서 바오다이(마지막 황제)가 잠시 국가원수와 총리직을 겸임했다. 그 뒤 바오다이는 총리직을 응우옌판롱에게 넘긴 뒤 국가원수직만 수행하였다. 55년 4월 30일 응오딘지엠이 국가원수가 되었으며 1955년 10월 26일 베트남 공화국이 정식 발족되면서 응오딘지엠이 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