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창단팀 신용보증기금 농구단에 입단하였다. 숭의여고 시절 '초고교급 가드'로 일찌감치 인정받아 명문팀과의 계약이 유력시 되었지만 '여자 농구의 대모' 박신자를 감독으로 추대하고[1] 고교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다음 해 시작될 농구대잔치를 위해 적극적인 스카웃 노력을 기울인 신용보증기금과 결국 계약이 이루어졌다. 1982년 10월 필리핀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를 위한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어 주전 가드로서 활약하였으나[2] 대한민국팀은 중국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3]
1984년 5월 쿠바아바나에서 열린 프레올림픽에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백업 가드로서 미국과의 결승전 등 세 경기에 교체 출장하며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그해 10월에는 중국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 인도 전에서 최애영을 대신하여 베스트 5로 선발 출장[4] 하는 등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대한민국팀의 대회 4연패에 일조하였다.
1986년에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만 '만년하위팀'[5]의 오명을 극복하지 못한 소속팀의 부진으로 인해 대중들의 조명을 크게 받지는 못하였다. 1987-88 시즌 농구대잔치에서 국가대표 구정희와 함께 황금 가드 콤비를 이루며 잠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5] 신생팀의 핸디캡과 포스트진의 부재로 우승권에 근접하지 못하고 1988-8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