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金溶植, 일본식 이름: 金本溶植 가네모토 요키, 1913년 11월 11일(음력 10월 14일) ~ 1995년 3월 31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외교관, 행정관료, 정치가, 사회기관단체인이다. 경상남도 통영군 충무읍 출생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추정(秋汀)이다.
주요 이력
1937년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를 학사 학위하고, 1939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49년 1월 외무부에 들어왔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를 쓰던 대통령 관저에서 기거하였다.[1] 그리고, 주 홍콩 영사, 주 호놀루루 총영사를 맡았다. 주 호놀룰루 총영사이던 1951년 2월, 김용식은 하와이 교민 양유찬을 찾아가 이승만과 면담할 것을 통보했다. 이것은 이승만이 양유찬을 주미대사로 임명하기 위한 것이었다.[2] 이어서, 김용식은 주 일본 공사(1951년 12월 ~ 1957년 5월), 주 프랑스 공사(1957년 ~ 1959년), 주 제네바 공사, 주 유엔 대사, 주 영국 대사(1961년 7월~1962년 8월)를 역임했다. 주 영국 대사 재임 시, 사절단을 이끌고 그리스를 방문하여 그리스 외무장관 에반 로스 아베로프, 국방장관 죠지 테멜리스와 접견하고 그리스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3] 이어서 주 필리핀 대사(1962년 8월~1963년 3월)[4]를 거쳐 외무부장관(1963년 3월 ~ 12월)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무임소장관(1963년 12월 ~ 1964년 5월)을 거쳐 재차 외무부장관(1971년 6월 ~ 1973년 12월)과 국토통일원장관(1973년 12월~1974년 9월)을 맡았다. 이어서 주 미국 대사(1977년 4월~1981년 6월)에 임명되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 정부가 김용식을 신임 주미대사로 임명한 것은 미국의 카터 행정부와 새로이 참신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한국정부의 노력으로 보인다고 1977년 2월 23일 보도했다.[5] 이 밖에도 대통령외교담당 특별보좌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6] 그리고 1988년 하계 올림픽 잉여금으로 만들어진 평화상기금 위원장직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은퇴하였다.[7]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각주
전임 (직무대리)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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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1994년 3월 31일 ~ 1995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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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직무대리)채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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