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클럽(일본어: 記者クラブ 기샤쿠라부[*])은 정부 부처나 경찰청, 기업 등의 출입처에 마련된 기자실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만든 일본의 언론 단체이다.
기자클럽은 소속 기자에게만 기자실 출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기자클럽의 자체적인 승인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 때문에 잡지나 외신, 프리랜서 기자의 기자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칠판 협정(黒板協定 고쿠반 교테이[*])은 기자클럽 소속 기자들끼리 맺는 약속이다. 칠판 협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기자실에서 주로 칠판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주로 언론사 간의 과도한 취재 경쟁을 막기 위해 맺어진다. 칠판 협정은 취재원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납치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경찰이 칠판 협정을 요청한다.
1956년 일본잡지기자회(日本雑誌記者会 니혼 잣시 기샤카이[*])와 일본잡지사진기자회(日本雑誌写真記者会 니혼 잣시 샤신 기샤카이[*])를 포함한 일본잡지협회(日本雑誌協会 니혼 잣시 교카이[*])가 잡지 편집과 관련된 취재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기자클럽이 만들어지면 정부 기관 등의 부처나 단체가 언론 매체에게 공식적인 발표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취재원이 기자클럽에게 발표 시간을 알려줄 경우 취재 활동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사를 수집하고 편집하는 사이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각 언론사를 위한 정보 전달 체계를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지역 단체가 상위 기간의 가자클럽에 접촉하면 정보를 전달하기 수월하다.
기자클럽 옹호자들은 모순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기자클럽의 영향력이 취재 기관이 개방되도록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군소 언론이나 프리랜서 기자, 외신은 기자클럽 가입을 제안하고, 특정 신문사이나 방송사가 독점적으로 취재를 하도록 하면 정보가 통제되기 쉽다. 취재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질 기회가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자클럽은 일본과 외국에서 배타적인 일본적 시스템의 상징으로 비판받고 있다.
기자클럽은 오프 더 레코드 파기를 제재하는 자체적인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규정을 깼을 경우 위반자는 기자클럽에 출입하는 것을 거부당하는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기자실은 클럽 회원사에게 독점되지만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있다. 지방 자치 단체까지 합하면 연간 총 운영 비용은 6백만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의 주요 업무는 주로 브리핑 자료를 요약하는 것이므로 발표 자료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데 소홀하게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취재를 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것을 배우는 기자들이 줄어들게 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가 기자클럽에 발표된 자료로 쓰인다. 다른 선진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도 뉴스의 전직 기자인 우오즈미 아키라(魚住昭)는 "되도록 빨리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업무의 7할 또는 8할을 차지한다면, 세계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본능이 무뎌질 것이다. 이것을 알기 전에 공무원의 논리가 몸안에 침투해 공무원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어렵게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프리랜서가 되고 5년 후에 나도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사히 신문, 2001년 5월 26일자)라며 기자클럽이 기자를 정신적으로 서서히 무기력하게 만들고 언론인으로서의 본능을 무디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기자클럽은 정치인과 기자 사이를 가깝게 해서 부적절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중의원 의원 가와노 타로(河野太郎)는 기자가 정치인에게 식사를 대접받는 일이 흔하고, 동행 취재를 할 때 정치인과 같은 호텔에 묵으며, "정치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 때"가 "좋은 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1]
기자클럽은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며, 뉴미디어와 외신, 프리랜서 기자의 가입을 제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에 일본신문협회는 외국인특파협회(外国人特派協会, Foreign Correspondents' Club of Japan) 회원은 일본신문협회 회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정책을 적용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말 로이터가 가부토 클럽(兜倶楽部)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때부터 블룸버그, 다우존스 같은 거대 미디어 그룹이 주요 기자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신이 도쿄에 소수의 특파원만 파견하기 때문에, 특파원을 클럽에 가입시켜 상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외신은 소수에 불과하다. EU는 기자클럽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비난하면서, 기자클럽을 폐지하고 일본 외무성이 발급한 기자증을 소지한 모든 기자가 정부 부처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외신 기자들이 루시 블랙맨(Lucie Blackman)이란 영국 여성의 실종과 사망에 대한 경찰 브리핑에 참석하는 것이 거부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할 때 기자클럽 비회원은 동행 취재가 허락되지 않은 것(이지마 이사오(飯島勲) 비서관의 발언)이 원인이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일본 정부가 기자클럽을 해체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1994년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신생당 대표간사는 기자클럽에 가입되지 않은 잡지 기자들을 브리핑에 참여하도록 허용하려 하였으나 기자클럽과의 견해 차이로 결국 실행되지 못하였다.
2002년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왕당 간사장은 스포츠 신문과 주간 잡지, 외신 등 모든 언론이 참여할 수 있는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전에는 야당클럽(野党クラブ 야토 구라부[*])에 가입한 언론사만이 브리핑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93년 도쿄 증권거래소를 담당하는 카부토 클럽은 일본의 언론사만 가입할 수 있는 내부 규정을 바꾸어 외국인특파협회 회원사의 가입을 허용하였다. 외신에게 기자실 문을 여는 움직임이었다.
1999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日本経済団体連合会)의 요구로 경단연기계클럽(経団連機械クラブ 게이다렌 기카이 구라부[*])이 해체되었다. 클럽은 전자 설비, 조선, 자동차 같은 산업과 관련된 보도를 중점적으로 하였다. 언론사와 기업은 기자클럽 유지에 관해 논의하였으나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결국 클럽은 해체되었다. 업체들이 이미 개방된 브리핑을 도입하고 이메일과 보도 자료를 이용하고 있어 기자클럽을 이용하는 장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기자클럽을 이용하길 원했던 자동차 업계는 일본자동차공업회(日本自動車工業会)에 소속된 자동차산업기자회(自動車産業記者会)을 만들었으나 클럽이 제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마이니치 신문, 니혼케이자이 신문은 참여하길 거부하였다.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日本電信電話株式会社, NTT)를 담당하는 아오이 클럽(葵クラブ 아오이 구라부[*])은 NTT의 구조 조정로 해체되었다. 아오이 클럽은 하나의 기업만을 담당했기 때문에 비판받은 적이 있었다. 경제부장 단체는 구조 조정 이후로 아오이 클럽을 기자클럽으로 받아드리길 거부하였다. NTT는 클럽 회원사를 제외하고 잡지와 외신을 포함한 언론사를 위한 새로운 기자실을 열 목적으로 클럽을 해체하였다.
1996년 4월 가마쿠라시는 전국지과 지방지 가나가와 신문(神奈川新聞 가나가와 신분[*])을 포함한 6개 언론사가 가입된 가마쿠라 기자회(鎌倉記者会 가마쿠라 기샤카이[*] )의 이용을 중단하고, 시에 등록하면 어느 언론사나 이용할 수 있는 "홍보 미디어 센터(広報メディアセンター)"를 열었다. 다케우치 겐(竹内謙) 시장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의 시설이 소수의 언론사만 가입된 기자클럽에게 독점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2001년 8월 6일 도쿄 도청은 가지바시(鍛冶橋)와 유라쿠(有楽) 기자클럽에게 도청 사무실을 이용하는 비용을 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대신 전기료, 난방료, 수도료, 전화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도지사는 잡지와 외신이 브리핑에 참여하지 못하는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2004년 3월 30일 외무성은 중앙 정부 부처와 지방 정부 부처, 경찰서, 업계 단체 등에 공문을 보내 외신이 브리핑에 참석하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2006년 3월 14일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홋카이도청은 도정기자클럽(道政記者クラブ)이 사용하는 전기료, 난방료, 수도료, 기타 비용을 합한 약 2백50만엔을 청구하기로 결정하였다.
2001년 5월 15일에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당시 나가노현 지사는 "탈 기자클럽 선언(脱・記者クラブ宣言)"을 발표하였다. 다나카 지사는 현청에 상주하는 3개의 가자클럽을 폐쇄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表現センター)를 열었다. 거대 언론사가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자클럽 가입 언론사는 거세게 반발하였고, 나가노 현 안팎 언론사 간의 갈등을 일으켰다고 보도하였다.
2006년 10월 3일 무라이 히토시(村井仁) 지사는 미디어 센터를 회견장(会見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다나카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등록하면 일반 현민도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