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피렌체 국립 박람회에서 아바티는 그의 내면적 관점에 대한 메달을 받았지만 심사위원단 구성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메달 받기를 거부했다.[3] 그 후 그는 야외사생에 흥미를 느꼈다. 화가로서의 그의 활동은 1866년 제3차 독립 전쟁을 위해 다시 군대에 입대하면서 중단되었고,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군에 포로로 잡혀 크로아티아에 억류되었다.[4]
그해 말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온 아바티는 카스텔누오보 델라 미세리코르디아(Castelnuovo della Misericordia)로 이사하여 생애의 마지막 1년을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아바티는 그의 개에게 물려 광견병에 감염된 후 32세의 나이로 피렌체에서 사망했다.[5]
그의 그림은 빛의 효과를 선명하게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디에고 마르텔리의 와인 저장고에서 바라본 풍경》(1866)에서처럼 어두운 실내의 출입구를 통해 보이는 빛나는 바깥 풍경을 자주 그렸다.[6] 《카스틸리온첼로의 풍경》(1867)과 같은 그의 후기 풍경화 중 일부는 종종 마키아이올리가 선호하는 매우 길쭉한 수평 형식을 따른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