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가스는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됐고, 1908년 주의회 의원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연방 하원의원, 재무장관을 지낸 후, 1928년 히우그란지두술 주지사가 됐다.
193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히우그란지두술 주에 기반을 둔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는 군인들의 추대로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바르가스 정권은 반공주의를 내세워 브라질 공산당과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나치 독일이나 살라자르 정권과 밀착했다.[1]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국제적 불안을 이유로 이러한 체제는 정당화됐다. 브라질은 그동안 주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으나, 그의 집권 기간 중 연방의 권한이 강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을 지지했으나, 종전 직전에 연합군을 지지했다.[2]
1945년 5월 15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지를 받는 브라질 공산당에 대한 탄압과 방해공작을 목적으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끌어모아 브라질 노동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브라질 노동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바르가스는 반공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 전에 그를 지지했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는 물러났다. 그는 쿠데타로 물러났으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해 12월 총선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1950년에는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1951년 1월 제17대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했다.
두번째로 대통령에 오른 바르가스는 이스타두 노부 시대와 달리 복지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복지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고, 그의 인기는 떨어졌으며, 바르가스는 정치적 소외감을 느꼈다. 1954년 8월 24일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권총으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