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샤를 리셰의 영향으로 최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1882년 〈최면에 의한 히스테리 환자들의 다양한 신경 상태에 관하여 (Sur les divers états nerveux déterminés par l'hypnotisation chez les hystériques)〉에서 히스테리 특유의 신체적인 사실을 제시하면서 최면을 하나의 과학적 연구 주제로 재평가했다. 샤르코에게 최면에 대한 연구는 해부학적 임상법 (anatomo clinical method)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는 그가 신경계 질환을 해부학적 변형에 의해 설명하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탐험적 연구에는 최면이 이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샤르코는 히스테리성 마비가 기질적 병변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 기능성 병변"에 의함을 보였고, 이를 최면상태에서 재현했다. 반면에, 샤르코는 인위적으로 유발한 증상을 풀기위해 최면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는 샤르코가 치료적 맥락에서는 이 방법(최면)을 쓰지 않았다는 것으로 본다.
이 1882년에 출판된 책은 프랑스의 최면 연구의 황금기를 가져왔고, 샤르코는 살페트리에르 학교장이 되었다. 이 책에서 샤르코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위한 "위대한 최면술"의 4가지 상태를 설명했다. :
혼수상태: 피험자의 눈꺼풀을 눌러 만든 상태로 이 동안 대상은 "신경근 과흥분성 (작은 접촉에도 위축이 발생)"을 보인다. ;
강경증 상태: 피험자의 눈을 연 상태로 (또는 징을 울림) 대상은 주어진 자세를 취하고 자석을 이용하여 피험자 신체의 움직임을 마음대로 "전달"할 수 있다. ;
몽유병 상태: 피험자의 머리 꼭대기를 문지름으로써 얻은 상태, 이때 피험자는 정상적으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움직일 수 있다. ;
또한 샤르코는 히스테리가 남성에게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막연한 의학적, 대중적 편견에 격렬하게 반대를 했고, 외상성 남성 히스테리의 사례를 제시했다.[3] 히스테리가 트라우마에서 올 수 있는 기질적인 것으로 보는 샤르코의 견해는 산업 사고나 전쟁과 관련된 트라우마에서 발생하는 신경학적 증상을 이해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4]
레지옹 도뇌르 훈장: 1848년 8월 22일 슈발리에, 1880년 8월 4일 오피시에, 1892년 1월 12일 코망되르.
각주
↑J. Sédat (2002). 〈Avant Propos〉. 《Avant propos, in J. M. Charcot, Leçons du mardi à la Salpêtrière》. la Bibliothèque des introuvables, Paris. ISBN2-84575-069-2.
↑Bogousslavsky J, ed. (2010). 《Following Charcot: a Forgotten History of Neurology and Psychiatry. Frontiers of Neurology and Neuroscience》. S Karger Pub. 203쪽. ISBN978-3-8055-95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