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에 신민회를 창건하고 1910년에는 러시아 영토로 망명하였다. 선생은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을 지내던 1907년헤이그 특사 사건이 일어나자 황제 폐위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뒤에는 일본 육사 출신 군인 유동열, 김희선, 노백린 등과 함께 군대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최후
1910년신민회 인사와 함께 망명한 선생은 수수명의 러시아 외교관, 정치가와 교류하고 현지에 한인 청년 양성소를 만드는 등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힘쓰다 니콜리스크에서 41세의 나이로 숨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