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은 1864년에 일본 주재 영국 공사관에 견습 통역관으로 취직했다. 이때 일본어의 동사에 관한 이론을 연구했으며, 에도에서 어니스트 메이슨 사토와 함께 심오한 연구를 실시했다. 이 연구는 일본어를 연구한 서양 학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4] 애스턴은 1884년에 영사 업무를 위한 시험을 통과했고, 도쿄, 고베, 나가사키 등지의 영국 영사관에서 일했다.[3]
1884년에서 1885년까지 애스턴은 조선 주재 영국 총영사로 근무했다. 그 뒤 1885년에 도쿄로 돌아가 일본 주재 영국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일했다.[4] 1889년에 애스턴은 신병을 이유로 국외 업무에서 은퇴했으며[3][4] 영국에 정착했다.[5]
외교관 일에서 은퇴한 이후, 애스턴은 일본 문학과 일본 종교에 대한 책들을 집필하고, 한국을 주제로 한 기사를 쓰며 여생을 보내다가[3] 1911년 11월 22일에 데번 주의 비어에서 사망했다.[2] 애스턴 사후 그가 수집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로 된 작품들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으로 들어갔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