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포 대기근과 노부유키의 난행으로 인해 엉망이 된 번 재정을 복구하기 위해, 쓰가루 노부아키라의 정책을 따라 검약령과 경비 절감, 농지 개간과 재생, 저축제도에 의한 흉작 대책, 서양식 군비 증강, 대포 주조, 해안 경비 강화, 의학관, 난학당 설치 등 학문 장려 등등의 개혁 정책을 펴 번을 재건했다. 1859년음력 2월 7일, 사위 양자인 쓰가루 쓰구아키라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하며 조라쿠안(長楽庵)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하이쿠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히로사키 번은 그를 쓰가루 노부아키라와 함께 명군으로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