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트인들은 새 왕 해스퀸의 지도 하에 스웨덴의 왕비를 붙잡았으나, 스비아의 노왕 옹겐세오우가 흐레프네스홀트라는 성새에서 왕비를 구해냈다.[8] 옹겐세오우는 해스퀸을 죽이고,[9] 흐레프네스홀트의 기트인들을 공성하였다.[10] 그러나 다음날 해스퀸의 형제 휘겔락이 증원군을 이끌고 와[11] 기트인들은 구원받았다.[12] 옹겐세오우와 스비아인들은 왕비는 구했으나 전투는 져서 자기네 땅으로 돌아갔다.
기트인의 전사 에오포르와 울프 원레딩이 백발의 왕 옹겐세오우에게 한꺼번에 덤벼들었다.[16] 울프가 검으로 옹겐세오우의 머리를 치자 노왕은 머리카락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반격하여 울프에게 상처를 입혔다.[17] 그러자 에오포르가 왕의 방패를 쪼개고 투구까지 쪼개어[18] 옹겐세오우에게 죽음의 한 방을 먹였다.[19] 에오포르는 스비아 왕의 투구, 검, 흉갑을 휘겔락에게 바치기 위해 수습했다.[20] 귀환한 에오포르와 울프는 크게 상을 받았고,[21] 에오포르는 휘겔락의 사위가 되었다.[22] 이 전투의 결과 휘겔락은 옹겐세오우를 죽인 자(Ongenþeow's slayer)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23]
제2차 전쟁
스비아의 옹겐세오우와 오흐세레가 죽자 오넬라가 왕이 되었다. 이에 오흐세레의 두 아들 에안문드와 에아드길스는 기트의 왕세자(즉 휘겔락의 아들)인 헤아르드레드에게 망명해 몸을 맡겼다.[24] 이를 구실삼아 오넬라는 기트를 공격했다. 제2차 전쟁 때 에안문드가 오넬라의 대전사 웨오흐스탄에게 죽었고,[25] 헤아르드레드 역시 마찬가지로 죽었다.[26] 오넬라는 스비아로 돌아갔고 베오울프가 기트의 새 왕이 되었다.[27]
한편 에아드길스는 살아남았고, 나중에 베오울프가 오넬라를 죽여 에안문드의 복수를 해 준다.[28] 이 복수 이야기는 노르드어 문헌에도 나타나는데 베네른 호 빙상 전투가 그 예이다(다만 기트인이 전쟁에 참여했음은 세월이 지나며 잊혀졌거나 또는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3차 전쟁
화룡을 상대하고 사망한 베오울프 왕 옆에 꿇어앉은 위글라프가 기트의 영웅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또 스비아인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리라 한탄한다.
13세기 이후 쓰여진 《윙글링 일족의 사가》에 따르면, 7세기에 알가우트라는 기트의 왕이 자기 사위인 스비아 왕 잉걀드를의 초대를 받아 감라웁살라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날 밤, 알가우트를 비롯한 여러 초대받은 왕들은 자다가 불에 타 죽었다. 이를 통해 잉걀드는 기트인들의 본래 근거지인 베스테르예틀란드를 비롯한 여러 영토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한편 외스테르예틀란드의 동기트인들은 독립을 유지했다. 기트인은 이후 이바르 인 비드파드미의 대에 가서야 다른 스칸디나비아인들과 완전히 융합된다.
《고대의 어떤 왕들의 사가 파편》에 따르면, 이바르가 죽은 뒤 왕국은 둘로 분열되었다. 하랄드 힐디톤은 데인과 동기트를, 시구르드 흐링그는 스비아와 서기트를 차지했다. 《...사가 파편》을 비롯한 여러 문헌들이 하랄드와 시구르드가 브라벨리르 전투(750년경)라는 대규모 회전을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투의 결과 시구르드가 승리하여 스비아인, 기트인, 데인인 모두의 왕이 되었다. 이 전투 이후로 예탈란드가 스비아 왕국, 즉 스웨덴 왕국의 일부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12세기가 되면 기트인의 독립은 먼 옛날의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데인인 연대기작자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데인인의 사적》 제13권에서 왕을 선출할 때 기트인들은 더 이상 발언권이 없으며, 오로지 스웨덴인들에 의해 왕이 결정된다고 쓰고 있다. 이것이 13세기에 《서기트인 법》이 성문화된 이후로 기트인의 독립은 더욱 상실되었다고 한다. 이 법에 따르면 왕을 옹립하고 폐위하는 과정은 기트인이 아닌 스웨덴인들의 소관이라 명시하고 있다.[30]
↑ 가나스비아인과 기트인 사이의 물이라 함이 무슨 뜻인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왜냐하면 스비아인과 기트인은 지도에서 보듯 땅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Nerman 1925:117-119). 그러나 이 물이라 함이 문학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트인의 땅 예탈란드와 스비아인의 땅 스베알란드 사이를 오갈 때 주로 수로를 이용해 움직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면 의외로 쉽게 풀이된다. 양자의 국경에는 티베덴, 튀뢰스코그, 콜모르덴 등의 숲이 우거져 육상 교통 및 통신을 저해하였다.
↑Sveær egho konong at taka ok sva vrækæ ("it is the Swedes who have the right to elect king and to dethrone him").
↑Swerikis rike är af hedna värld samman kommit, af swea och gotha land ("The kingdom of Sweden is from pagan times a union of Swedish and Geatish/Gothic lands") (Lundström, 1972:6).
참고 자료
Lundström, I. (1972). Viking, viking. Forntidsdröm och verklighet. Statens historiska museum, Stockholm. p. 6.
Nerman, B. (1925). Det svenska rikets uppkomst. Stockho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