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나오타케

사토 나오타케
佐藤 尚武
본명다나카 나오타케
로마자 표기Sato Naotake
출생1882년 10월 30일
오사카부
사망1971년 12월 18일
성별남성
국적일본
학력도쿄 상업학교
경력하얼빈 총영사, 국제 연맹 사무국장, 런던 해군 군축 조약 사무총장, 주 벨기에 특명 전권대사, 주 프랑스 특명 전권대사, 일본 외무대신, 일본 외무성 외교 고문, 주 이탈리아 특명 전권대사, 주 소비에트 연방 특명 전권대사, 참의원 의장
직업외교관, 정치인
사토 나오타케

사토 나오타케(일본어: 佐藤 尚武, 1882년 10월 30일 ~ 1971년 12월 18일)는 일본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하야시 센주로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지냈다. 전후에는 참의원 의장 등을 지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소비에트 연방의 대일 선전포고 당시, 주 소비에트 연방 대사이기도 했다.

오사카부 출신으로 히로사키번사이자 오키나와현 경찰부장 다나카 곤로쿠(田中坤六)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4년 도쿄 상업학교 (지금의 히토츠바시 대학) 전과를 졸업하고, 1905년 외교관 및 영사관 시험에 합격해 외무성에 들어갔다.

하얼빈 총영사, 국제 연맹 사무국장을 거쳐 1929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 사무총장, 1930년 주 벨기에 특명 전권대사, 1933년 주 프랑스 특명 전권대사, 1937년 일본의 외무대신, 1938년 일본 외무성 외교 고문, 1940년 주 이탈리아 특명 전권대사를 지내고, 1942년 도고 시게노리 당시 일본 외무대신의 요청으로 주 소비에트 연방 특명 전권대사가 되었다.

외무대신 시절에는 제국 의회에서 전쟁 회피를 주장하였으며, 그의 주 소비에트 연방 대사 임명은, 일본의 전세 악화 가운데 일소 중립 조약을 체결했던 소비에트 연방의 중개를 통해 연합국과의 평화 모색을 위한 임무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사토는 이미 전쟁의 대세가 정해진 이상 소비에트 연방이 중개역에 설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였고, 조기 종전을 재촉하는 기밀 전보를 도쿄로 돌려보냈다. 결국 1945년 8월 8일, 크렘린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에 의해 대일 선전 포고가 선언되었으며, 일제가 그 해 8월 15일 항복하여 전쟁은 막을 내렸다.

전후에는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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