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수호조약 혹은 유미수호조약(일본어: 琉米修好条約, 영어: Convention between the Lew Chew Island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은 1854년7월 11일에 미국이 류큐국과 체결한 조약이다. 일본 측의 공식 명칭은「亜米利加合衆国琉球王国政府トノ定約」이며, 일반적으로 유미조약(琉米条約)으로 생략된다.
체결까지의 경위
1853년
5월 26일에 매튜 C. 페리가 서스케하나호 외 3척을 이끌고 처음으로 나하 항에 내항했다.
5월 28일에 페리는 총리관인, 마부니 촌(摩文仁村)의 안지(按司)로 있던 상대모(尚大模)와 처음으로 회견했다.
6월 6일에는 슈리성을 방문하여 슈리성 북전(北殿)에서 총리관 등과 회견했다. 후에 이에 대한 책임을 들어 상대모는 총리관을 사임하고 있다.
6월 8일에 페리는 국왕 등에게 물품을 증여하고, 6월 9일에는 미시시피호를 남기고 오가사와라 제도로 출항했다.
6월 18일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나하로 귀항한 페리는, 함대에의 자재 공급을 마친 7월 2일 서플라이호를 나하 항에 남기고 군함 4척을 이끌고 우라가를 향하여 출항했다. 이때 우라가로 향했던 4척과는 별도로 키프라이스호는 상해로 향했다.
7월 25일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를 에도 막부에 전한 페리는 우라가로부터 귀항하여 자재를 공급하고, 류큐 측에게 성규사(聖現寺)의 1년간 임대 및 그 협정으로, 약 5, 600톤의 석탄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의 건설 및 그 시설의 타당한 금액으로의 대여, 정리(偵吏)의 추적을 금지, 시장을 세워 교역을 자유롭게 하는 것의 4가지 조항을 요구해 이것을 승낙 받고 8월 1일에 홍콩을 향하여 출항했다.
1854년
1월 21일에 페리가 군함 3척을 이끌고 다시 내항해 재차 슈리성을 방문하여 자재 등을 공급하고, 2월 7일에도를 향하여 출항했다.
7월 7일에는 류큐와의 조약 체결을 향한 본격적인 교섭을 시작한다. 다음날 협의가 열려 조약안에 수정을 가하고, 조약에 관한 류큐 측의 회답 기한을 명후일인 7월 10일로 했다.
7월 10일에 다시 협의하여 조약 수정안을 승인하고, 류큐 측은 조약을 승낙한다고 답하여, 다음날 조인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1854년 7월 11일에 매슈 페리 제독과 상굉훈(尚宏勲)들이 조인한다. 조인서는 한자(류큐국의 외교상의 문서는 한자)와 영어의 2통을 작성하여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