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정책연구소바르샤바 연구소는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여러 사회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루마니아 모니터"를 이용하고 있다.
역사
관계의 시작
루마니아에 폴란드의 영향력이 끼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몰다비아 공국의 건국 때 부터였는데, 당시 발트해와 흑해 사이의 교류는 양국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게 만들었다. 이후 몰다비아는 폴란드 왕국에 속국이 되었고, 폴란드 왕국이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합쳐졌으며, 몰다비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2]
폴란드 침공 이후 최대 12만명의 폴란드군은 서방 계획에 따라 루마니아 교두보로 철수하여 루마니아와 헝가리를 무력화시켰다. 이 폴란드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연합국의 가장 큰 군대 중 하나였다.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하자,[4] 폴란드에서는 25,000명의 난민이 루마니아 교두보를 통해 루마니아 지역으로 피신했다.[5]
1939년 9월, 소련과 독일의 압박에 루마니아는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루마니아로 옮겨진 폴란드의 금을 콘스탄차 항구로 수송하여 터키를 거쳐 프랑스로 철수시키는 것에 동의했다.[6] 빌헬름 파브리시우스 루마니아 주재 독일 대사가 루마니아의 중립 위반에 대해 항의하자 그리고레 가펜쿠는 폴란드의 금 수송에 대해 모른다고 답하면서 조사를 실시할 것만 약속했다.[7] 그러나, 금 수송은 성공적이었고, 독일인들은 분노했다. 또다시 빌헬름 파브리시우스는 루마니아가 중립을 위반했다며 그리고레 가펜쿠를 위협했다.[8]
전쟁 도중, 루마니아는 폴란드의 어린이 난민을 위해 Călimănești, 플로이에슈티와 트르고비슈테에 10개의 폴란드 초등학교와 7개의 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학교를 졸업한 젊은 폴란드인들 중 일부는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폴란드군에 합류해 독일군과 싸웠다. 1940년에는 독일이 루마니아까지 영향력을 미치자 일부 폴란드인들은 키프로스로 떠났다.[9]
최근 관계
2017년부터 양국은 양국의 영토에 파병대를 배치하여 NATO군으로 주둔하고 있다. 2021년 10월에 폴란드는 루마니아의 코로나19 범유행을 막기 위해 의료 장비와 의료진들을 루마니아에 파견하기도 했다.[10]
상업적 관계
폴란드 경제 개발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교역액은 48억 6천만 유로에 달했다.[11]
2020 여성 리더십 포럼(WLF)는 정치, 경제, 교육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루마니아와 폴란드 간의 협력 강화를 목표로 하여 바르샤바에서 3월 4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었다.[12]
루마니아의 폴란드인들은 루마니아 내에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루마니아 폴란드인 연합"(폴란드어: Związek Polaków w Rumunii "Dom Polski", 루마니아어: Uniunea Polonezilor din România)이라는 정당을 설립하여 하원의원에 1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루마니아 내에서 폴란드인들은 "폴란드 가정"이라는 문화 센터에 방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