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핑자우섬(광둥어: 東平洲, 퉁핑차우섬)은 홍콩에 위치한 섬이다. 원래 이름은 핑자우섬(광둥어: 平洲)이며, 홍콩 내에는 또다른 핑자우섬이 있는데, 광둥어에서는 이 둘을 같게 발음하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둥' (東)을 섬 이름에 붙인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산가이다이보 구에 속한다.
지리
핑자우섬은 홍콩 북동쪽 끝의 다이팡 만에 위치한 외딴 섬으로,[1]중국 본토의 광둥성 사이 경계선과 가깝다. 섬의 면적은 1.16 km2이며[2]셰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핑자우섬은 홍콩 영토의 극동점에 있어서 홍콩 본토보다 중국 본토에 더 가까우며 (4km), 심천시대붕신구 난아오 가도와 인접해 있다.
핑자우섬은 강낭콩 모양에 오목한 부분이 북동쪽을 향해 있는 모습이다. 핑자우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평평한 섬'이란 뜻이다.[3] 핑자우섬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은 남쪽의 48m, 북쪽의 37m다. 섬 동부에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바닷가는 핑자우해 (平洲海)와 만나며 북동부의 청싸완 (長沙灣)을 비롯한 해수욕장이 여럿 존재한다. 반면에 섬의 서부 바닷가는 상당히 바위가 많고 거친데, 앞으로 기운 실트암에 큰 파랑이 몰아치면서 생겨난 것이다.
핑쩌우섬의 가장 큰 마을인 싸다우 (沙頭)는 일종의 유령 마을로, 그곳의 많은 오두막집들이 판자로 막아 놓았다. 섬 내에는 국유 공원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4] 난초, 야생박하, 나팔꽃이 무성하게 자란 오솔길도 있다.[5]
역사
핑자우섬의 역사는 파란이 많았다. 한때는 화약과 아편이 이곳에서 밀수되기도 했고, 문화대혁명기에는 수많은 본토인들이 핑쩌우섬에 도달해 홍콩에서 자유를 누리길 빌면서 수영해 건너오기도 했다.[6][5]
지금은 사실상 버려진 땅이 되었지만, 핑자우섬은 한때 100척이 넘는 고기잡이 정크선을 비롯해[7] 3,000명의 주민이 사는 어업과 농사가 번창하던 사회의 보금자리였다.[8] 역사상 핑쩌우 섬애 있던 오래된 마을로는 짜우메이 (洲尾), 짜우타우 (洲頭), 나이타우 (奶頭), 싸타우 (沙頭), 다이통 (大塘) 등 다섯 곳과, 그보다 작고 뒤이어 발전했던 일가족 마을인 찬욱 (陳屋), 람욱 (林屋), 레이욱 (李屋), 짜우욱 (鄒屋), 쩌이욱 (蔡屋), 이 다섯 곳이 있었다.[9] 짜우메이 마을은 다이보우 시장과 성던롱강구에 있는 해안마을 싸위중 (沙魚涌)에서 잡은 것을 내다 팔던 어부들이 자리잡고 살았다.[7]
일본의 홍콩 점령기간 (1941~1945)에 핑자우섬은 중국군에게 휘발유를 비롯한 군수품을 지원해 주던 병참기지로 사용됐다. 연합군의 여러 장군들도 이 섬을 통해 본토로 이동해 왔다.[7]
1950년대 핑자우섬에는 약 1,500명의 사람들이 열 개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8] 초등학교도 두 개씩 지어졌는데, 다이통의 콴잉 학교 (群英學校)와 차우타우의 와이싼 학교 (維新學校)가 바로 그것이었다.[10] 이 당시 섬의 경제는 수산자원 고갈과 한국 전쟁 (1950~1953)의 결과로 본토와의 무역이 중단되면서 무너져가기 시작했다.[7] 문화대혁명 (1966~1976) 시기에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본토와의 무역길이 막혔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섬을 떠났다.[8] 197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노인 몇 명만이 섬에 남아 있었다.[11] 결국 2004년에는 마지막 남은 주민이 둥핑자우섬을 떠나게 되었다. 다만 주말마다 몇 사람씩 들어오던 상태였다.[8]2013년 다이보우 구청은 핑자우섬의 인구를 8명으로 추산했다.[12]
지질
핑자우섬은 홍콩에서 퇴적암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큰 섬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홍콩은 대다수 지역이 쥐라기 기간에 큰 화산들이 연속으로 분출해 나오면서 형성된 분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 활동의 결과로 북동부에 분지가 형성됐고 이곳에 있던 염호에 퇴적물이 쌓였는데, 여기서 둥핑자우의 실트암과 규질암을 만들어냈다. 이 실트암과 규질암의 연대는 팔레오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핑자우섬에는 거대한 해식애와 파식대도 여럿 있다. 이러한 지형은 홍콩 내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짠겡짜우 (斬頸洲)는 섬에서 떨어져 나온 땅으로,[13] 이름은 '용의 머리'라는 뜻이다.[5] 또다른 유명 기암으로는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 룽록써이 (龍落水)가 있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형상을 띠었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3] 섬의 남동쪽 끄트머리에는 큼직한 바위 두 개가 있는데, 강라우쎅 (更樓石), 즉 보초탑 바위라고 부르며 북 바위라고도 한다.[5] 이 바위들은 파식대에 직립해 있는 시 스택이다.[3] 난궈써이 (難過水)는 남쪽 해안을 따라 자리한 높다란 수직 절벽으로, 장기간에 걸친 파랑 작용으로 여러 해안동굴이 나 있다. 난궈써이는 썰물 때와 바다가 잠잠할 때 강라우쎅에서 걸어서 가볼 수 있다.[1]
관광
핑자우섬에는 1765년에 지어진 틴하우 사원과,[10] 1877년 이전이 지어져 담궁을 모시는 담다이신 사원 (譚大仙廟)이 있다.[9] 두 절 모두 싸타우 마을 내에 위치해 있다. 핑자우 마을의 처음 주민들 대부분은 산터우에서 건너왔고, 그로 인해 주민들은 섬에 정착한 뒤로도 담궁을 모시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다른 오래된 건물 몇 곳도 섬 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섬 한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으며, 그 아래는 뾰족한 바위들로 가득한 어마어마한 파식대를 볼 수 있다. 이 절벽은 기울기거 30도이기 때문에 마치 계단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곳에는 바위 웅덩이들이 많은데 그 안에는 성게나 게처럼 여러 해양생물들이 있다. 섬 부두쪽 해안가에는 60종 이상의 산호류와 35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주말마다 핑자우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중에는 다이빙을 하러 왔거나, 절벽과 파식대를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다. 주말 휴양지로 즐기는 사람들도 조금 있다. 이런 식으로 2005년 한해 동안은 57,000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8]
핑자우섬에는 소풍장이나 바베큐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 있으며, 어농자연호리서에서 관리한다.[14]둥핑자우 공중 부두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다이통에는 일반식당 몇 곳도 찾아볼 수 있다.[15]
보존
핑자우섬에는 3급 사적으로 등재된 건축물이 두 곳 있다. 바로 틴하우 사원과 담다이신 사원이며 모두 싸타우 마을에 위치한다.[16] 1979년부터 핑자우섬은 특수 과학 가치 지점으로 지정된 상태다.[17]
핑자우섬은 동쪽 해안가를 따라 지어진 오래된 마을 지역을 제외한[8][4] 섬 전역이 1979년부터 선만교야공원 (船灣郊野公園)으로 지정된 상태이며[3] 2001년부터는 둥핑자우 해양공원이 지정되어 홍콩에서 네번째로 큰 해양공원이 되었다. 이 해양공원의 면적은 핑자우섬과 인접한 해상으로 약 2.7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1] 또 홍콩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여덟 구역 중 한 곳이기도 하며[18] 2009년에 지정되었다.[19]
교통
핑자우섬은 홍콩중문대학 부근에 있는 마리우써이항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다. 정박 지점은 둥핑자우 공중 부두 (東平洲公眾碼頭)로, 핑자우섬의 유일한 공공 부두이기도 하다. 웡예곡 (王爺角) 섬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2007년에 정비 공사를 거쳐 완공되었다.[20] 핑자우의 항운 노선은 쩌이와 선무유한공사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토-일요일과 휴일에만 운항한다.[21][22] 이동 시간은 1시간 40분 가량이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