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스프라이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왕립 캐나다 여단의 제1대대를 맡았고, 이후 제1캐나다보병여단의 여단장이 맡았다. 1944년 그는 캐나다 제12보병여단을 맡았다. 1944년 말, 그는 제3캐나다사단을 맡아 라인란트 전역이 끝날 때까지 사단장으로 부임했다.[2]제2캐나다군단의 군단장이었던 가이 시먼즈는 블록버스터 작전 당시 클리브스 남동쪽에 위치한 모이란트의 엄중히 방어된 삼림지대에 대한 스프라이의 공격에 실망하며, "그는 전략적인 이점이 부족했고, 위급한 상황에서 과감히 돌진할 줄 몰랐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스프라이는 가이 시먼즈나 해리 크레러 모두 전투의 중요한 상황을 완전하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믿었다. 시먼즈는 단호하게 스프라이가 밀어붙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크레러는 더 동정적이었고, 그는 영국군에 소속된 캐나다 보병부대에 스프라이를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4] 스프라이는 블록버스터 작전이 끝날 무렵 제3사단장에서 물러났고, 캐나다 보충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