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년에 아버지 이예가 황태자에 책봉되자, 이괄은 황태손에 책봉되었고, 764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779년에 부황 이예가 붕어하자, 바로 즉위하였다. 이듬해인 780년에 재정을 개선시켰고, 재상 양염(楊炎)의 건의에 따라 조·용·조 제도에서 양세법(兩稅法)으로 바꾸었다. 그 때에도 반란은 잦았으며, 장군인 주비(朱泚)가 황제를 참칭하자, 이괄은 군사를 보내어 한중에서 반란군을 격파하였다.
중앙 집권을 강화하려 힘썼고, 수도 장안의 상업을 더욱 늘려, 어떤 사람들은 이 때를 '중흥의 치'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환관들을 많이 등용하는 폐단이 발생하여, 이는 훗날 당나라의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초반 도강 직후 대전에서 국회의장신익희, 국회부의장 장택상, 조봉암은 함께 대통령 이승만을 찾아가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고 약속해놓고 약속을 위반하고 도주한 것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라고 요구했으나 이승만은 '내가 당 덕종이냐'면서 거절했다. 당 덕종은 반란을 진압한 뒤 백성들이 난에 휩쓸린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사과한 바 있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