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시마현에 있던 구와노촌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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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노촌(桑野村)은 후쿠시마현 아사카군에 존재했던 촌이다.
역사
구와노촌은 메이지 초기까지 오쓰키하라라고 불리는 미개척지였으나, 메이지 5년에 후쿠시마현 권령에 취임한 전 구마모토 번주 안바 호카즈는 홋카이도 개척에 관심이 많았던 구 요네자와 번주 나카조 마사카즈(中條政恒)를 현 권업과 개척계 전사(典事)로 임명하고, 무신전쟁 후 사족의 수산책으로 오쓰키하라 개척의 전권을 맡겼다. 먼저 구 니혼마쓰 번사족 19가구가 오쓰키하라의 한 구석(현재의 고리야마시 가이세이 지구 주변)에 정착하여 개간이 시작되었다, 1873년 나카조는 아베 시게베 등 25명의 고리야마 마을의 부호들을 설득하여 '가이세이샤'를 설립하고 개척 자금과 이주민을 모집하여 개간을 본격화했다[2][1]. "개성(開成)이라는 이름은 나카조의 좌우명인 '개물성무(開物成務)'에서 따온 것이다[1]. 오쓰키하라에는 뽕나무가 심어지고 길이 만들어졌으며, 메이지 7년에는 개척 사무소 겸 구회소로서 의양식 건축의 '가이세이칸'이 세워졌다(이후 군청, 현 고리야마시 가이세이칸).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의해 구와노무라 단독으로 촌제를 시행해 아즈미군 구와노촌이 성립하였다.
- 1925년 6월 1일 - 구와노촌은 고리야마시에 편입되어 소멸하였다.
변천사
1868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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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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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22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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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14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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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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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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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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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야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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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야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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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세대
인구
- 1876년 700
- 1889년 1,318
- 1902년 1,746
- 1920년 2,334
세대
총수 [단위 : 명]
- 1876년 203
- 1902년 328
- 1920년 429
교통
도로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