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노미야 쿠니이에 친왕(일본어: 伏見宮邦家親王 ふしみのみや くにいえしんのう[*])은 에도 시대에서 메이지 초기의 일본의 황족이다. 20대 및 23대 후시미노미야이다. 후시미노미야 사다요시 친왕의 장남이다. 아칭은 마사노미야 (睦宮)이다. 직계 존속인 천황부터 본 가문은 남계에서는 북조 3대 스코 천황의 14세손, 여계에서는 레이겐 천황의 내손에 해당한다. 아버지 사다요시 친왕은 황위 계승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1947년 (쇼와 22년) 황적이탈한 구황족 11궁가 모두 최근공통조상으로 125대 천황 아키히토의 외가 고조부 (고준 황후 (쇼와 천황의 황후)에 해당한다.
겐지 원년 (1864년) 2월 7일, 환속을 허락받고 후시미노미야를 재계승해, 쿠니이에의 이름으로 복귀했다. 겐지 3년 (2년이라는 설도 있음) 3월, 2품으로 승진하여 식부경이 되었다.
대정봉환이 되면서, 게이오 3년 (1867년) 국사어용달에 임명되었다. 게이오 4년 (1868년) 3월 2일, 여러 해에 걸쳐 악도에 정진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1품에 서임되었다. 메이지 5년 (1872년) 3월, 가족과 함께 교토를 떠나 도쿄로 이주했다. 4월 10일, 가독을 14남 사다나루 친왕에게 물려주고 은거했다. 같은 해 8월 5일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족
쿠니이에 친왕은 아버지 사다요시 친왕과 마찬가지로 자식 복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성인 남자가 많았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 이후의 후시미노미야계 황족 융성의 계기를 마련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