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성채가 존재하며 1세기에 카락스의 이시도어에 의해 언급된 프라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5세기에 파라는 사산 제국 동부의 주요 거점 이었다. 두 차례의 약탈(1221년몽골, 1837년페르시아 제국) 이후로 크게 피폐해 졌으나, 1930~1950년대에 칸다하르-헤라트 도로가 건설되고 파라 강에 다리가 건설되어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중요성이 다시 커졌다.[출처 필요]1979년 초 소련의 군사개입이 있을 당시 이 근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으며, 1980년대까지 이 지역에서는 전투가 간헐적으로 계속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