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항복 이후, 미국 해군 함정 프래스캇 요원들이 8번 부두에 상륙하였고, 부산 훈련 사단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이 곳에 있는 경마장을 본 한 해군 요원은 그의 고향인 근처 플로리다주에 있는 유명한 경마장을 떠올리고, 그 도시 이름을 따서 하이얼리어로 이름지었다[3]
"하이얼리어"(영어: Hialeah /ˌhaɪəˈliə/[*])는 북아메리카 중부 지역(현재 미국의 남동부)에 살던 원주민인 크릭 족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하이약포"(북아메리카의 대초원 지역을 말하는 프레리를 뜻함)와 "힐리"(아름답다를 뜻함)를 합친 말로, "아름다운 프레리"라는 뜻이다. 또 다른 설은 플로리다 원주민인 세미놀 족의 미카스키 말로 "높은 프레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비스케인만과 에버그레이드 사이의 넓은 프레리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측의 정식 명칭은 캠프 하이얼리어지만, 발음이 어려워 부산시민들은 하야리아 부대로 불렀다.[5]
역사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경마협회 소유로 경마장으로 쓰였으며, 경주로는 기지 내 순환 도로로 사용되었다.[3]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마장 터는 일본 조선군의 훈련소로 쓰이다가, 1945년 광복 직후, 한반도에 상륙한 주한 미군이 접수하였다.
1945년 9월 16일 미국 제6보병사단이 부대 지휘를 인수받았으며, 부산 최초 미군 지휘관은 존 피에이치 케리(John P.H. Kerry) 소령으로 1946년 말까지 주둔하였다. 이후 미국 영사관과 유엔에서 사용하다가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시작되어 유엔의 결의 이후 다시 미군이 지휘권을 가져갔다.[3]
제8609보충지 작전으로 1950년 7월 미국 제24보병사단이 상륙하고, 부산은 군수물자와 병사의 주요 보급창이 되었다. 1953년 휴전 협정을 서명한 후, 하야리야 부대는 한국전 전사자 및 부상자의 교환 지역과 병력 숙영에 쓰이다가, 토지를 추가하여 현재의 크기로 확대되었다. 1954년 말 한국군 전사자 및 부상자 교환지역이 해체되었다. 이후 40여년 동안 미군 사령부가 설치되어, 전쟁에 투입되는 물자와 장병의 이동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최대 군수기지 역할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경마장 입장과 관람객을 수용하던 건물은 미군 장교클럽(헤븐클럽)으로 쓰였다.[3][6]
부대 내에는 180여채의 군인 숙소가 있었고, 학교, 병원, PX, 식당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부산항 제8부두, 김해국제공항의 군용 시설, 부산 배급창(혹은 "제55보급창") 등을 관리하였다.[7]
1960년, 미국 국무부 초등학교 과정이 개설되었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미국인 학교였다. 1967년 반원형 막사에 고등학교 과정이 미국 국외에서는 최초로 개설되었으며, 1983년에 건물이 신축되었다. 미국인 학교는 매년 200 여명의 학생을 유지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미국무성 12학년 과정의 학교였다. 2005년 이후 학생 수가 점차 줄어 2006년 6월 학교 폐쇄시에는 학생이 88명 남아있었고, 마지막 졸업식에서 11명이 졸업했다.[3]
1984년 9월 17일 주한 미군 부산 사령부가 해체된 후, 지휘부와 제5지역단위부대는 제19지원사령부 예하 제34지원단으로 개편되었다. 1986년과 1987년에 제34지원단은 제4병참파견대와 제주도 훈련소 및 부산 자재창을 추가로 책임지게 되었다.
이후, 재편성 작업으로 제34지원단은 서울특별시용산기지로 이동하고, 1990년 9월 4일 대구의 제20지원단이 인수하게 된다. 이후 걸프전이 발발하자, 제4병참단은 터키로 재배치되었다.[3]
기지 반환
캠프 하야리아가 들어설 당시에는 부산 도심에서 떨어져 있었으나, 이후 도심 기능이 서면으로 이전되면서 1995년부터 부산 지역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하야리아 기지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다. 2002년 주한 미군과의 LPP 수정 협상을 통하여 일부 시설물을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으며, 2004년 7월 23일 FOTA 회의에서 하야리아 기지를 2005년까지 반환하며, 동시에 강서구 이전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기로 하였다.[8] 반환 협상 이후 2006년8월 10일에 부대를 폐쇄하고,[9] 기지 내 오염물 처리 문제로 부대 폐쇄 이후에도 협상이 진행되다가[10] 2010년 1월 27일 반환 협상이 타결되어 부산시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부산시에서는 2010년 4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부지 일부를 시민에게 개방하였다.[11] 개방 이후 부산시는 부대 부지에 시민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있으며, 2011년 2월부터 11월까지 문화재 발굴을 진행했다.[12] 3월 28일 시민 공원의 기본 설계가 확정되었다.[13]
부산진구 범전ㆍ연지동 일원 528,278 m²에 시민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2011년 3월 부산시민공원으로 공식 명칭을 선정했다. 2011년 8월 11일 기공식을 개최하였으며, 2014년 5월 1일,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