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비룡산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사냥 왔다가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몰이꾼들의 말이 이산은 신령하니 산제를 올려야 한다고 하여 이튿날 정상에서 제를 지낸 후 사냥을 한 사실에서 기원한다.[1]
축령산 서쪽 전지라골에는 축령산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60년생 잣나무 숲이 울창하고, 물놀이장, 자연관찰원, 잔디광장, 철쭉동산 등이 조성되어 있다.[2] 축령산의 동쪽 기슭(가평군)에는 아침고요수목원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축령산은 산악인들이 매년 연초에 지내는 산신제인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는 명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산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성계가 고려 말에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몰이꾼의 말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여 산 정상에 올라 제(祭)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때부터 고사(告祀)를 올린 산이라 하여 ‘축령산’으로 불렸다고 전한다.[3]
또 하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축령산 이름의 유래는 조선 세조-예종 당시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1441년 ~ 1468년) 장군과 관련된 것이다. 축령산에는 남이 장군이 어릴 적 무예를 닦았다는 남이바위가 있고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가평의 남이섬이 있는 것을 보면 남이 장군 유래설이 근거가 약하지 않다.[3]
유자광의 거짓 고변을 들은 예종이 스물여덟의 남이를 죽이자 이 지역 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로하고자 남이와 관련이 있는 이 산을 축령산으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