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의 종탑(이탈리아어: Campanile di Giotto)은 이탈리아피렌체에 있는 종탑이다. 조토 디 본도네가 설계하였다. 1334년 제작을 시작하여 조토가 죽은 후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에 완성했다. 높이는 약 85m이다.
역사
피렌체 대성당의 공사 책임자였던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1302년에 사망하고 30여년간 공사가 중단된 뒤, 1334년 유명 화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가 그 후계자로 임명되었다.[1] 임명 당시 조토는 67세였다. 조토는 대성당의 종탑 (캄파닐레) 설계와 건설에 온 힘을 다했다. 이를 통해 탁월한 건축가가 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13세기 초부터 건축 설계자들의 독보적 지위가 일반적인 공예가보다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1334년 7월 19일 종탑의 초석이 깔리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2] 조토의 설계안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대성당에 적용한 폴리크롬 (polychrome, 다채색) 기법을 그대로 따라가, 종탑이 '채색'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또 설계할 때 직선만으로 드로잉하기보단 명암법으로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그려냈다. 그리고 선조세공으로 된 고딕 건축물 골조가 아닌 기하학 무늬로 된 색조 대리석을 겉에 두르도록 했다.
1337년 조토가 사망했을 때 종탑은 하층부 대리석 외벽만 완성된 상태였다. 기하학 무늬로 배열 대리석 중에서 흰색은 카라라에서, 녹색은 프라토에서, 붉은색은 시에나에서 공수해 쌓았다. 하층부의 세 면은 저부조 (얕은 돋을새김)로 된 육각판들이 한 면당 일곱 개씩 장식되어 있었다. 1348년 출입문을 넓히면서 두 개 판이 비어있던 북쪽 면으로 옮겨 걸리게 되었고, 1437년에 와서 루카 델라 로비아가 나머지 다섯 개를 더 제작하여 채웠다. 석판의 개수인 '7'은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인간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이 석판을 만든 장본인은 특정하기가 어려운데 몇 개는 조토가 직접 만들었고 다른 석판은 안드레아 피사노 (내지는 피사노의 공방)에서 만들어져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종탑으로 조토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만든 브루넬레스키, <건축에 관하여> ('De re aedificatoria', 1450년)를 쓴 알베르티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부흥의 아버지가 되었다.
조토가 죽고 1343년 안드레아 피사노가 공사 책임자로 임명되었다.[1] 피사노는 이미 피렌체 세례당의 남쪽 문을 작업하여 그 명성이 자자했다. 피사노는 조토의 설계안을 그대로 따르면서 종탑 공사를 계속했다. 조토가 지어놓은 하층부 위에 두번째 띠벽을 둘렀는데 이번에는 사각판들로 꾸며 놓았다. 그 위에 두 층을 더 올리고 그 두 층의 각 측면마다 네 개씩 벽감을 파냈다. 다만 두번째 열은 비워 두었다. 1348년부터는 흑사병이 대창궐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피사노의 자리는 프란체스코 탈렌티가 이어받았다. 그는 위쪽 세 층을 쌓아 커다란 창을 내는 공사를 진행했고 1395년에 종탑을 완성시켰다.[1] 피사노는 조토가 설계안에 넣었던 첨탑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높이였던 122m에서 84.7m로 낮아지게 되었다. 계단 414개를 걸어오르면 도달하는 종탑 꼭대기에서는 피렌체의 숨막히는 전경과 그를 둘러싼 언덕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작품
현재 종탑에 설치되어 있는 예술 작품들은 전부 복제품이다. 원본은 1965년~1967년에 대성당 뒤편에 있는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다.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조토의 종탑은 <어쌔신 크리드 2>의 피렌체 맵에서 실제 피렌체의 여러 건축물과 함께 풍경 중 하나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