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First Macedonian War, 기원전 214년-기원전 205년)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로마 공화국과 연합한(기원전 211년 이후) 아이톨리아 동맹과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1세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동시에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년-기원전 201년)에서 카르타고를 상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결정적인 교전은 없었고,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쟁 중 마케도니아는 일리리아와 그리스의 일부를 장악하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동부에서의 교전으로 마케도니아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을 돕지 못하게 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기원전 205년에 포이니케에서 맺어진 조약인 〈포이니케 조약〉으로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배경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로마의 힘이 그쪽으로 쏠리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그의 힘을 서부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필리포스가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중요한 요인은 파로스의 통치자 데메트리우스의 영향이었다.
데메트리우스는 기원전 229년에 제1차 일리리아 전쟁이 끝난 후 일리리아 해안 대부분을 통치하게 되었다.[1] 그러나 기원전 219년, 제2차 일리리아 전쟁 동안에 그는 로마에 의해 패배를 당하자, 필리포스에게로 달아났다.[2]
아이톨리아와 전쟁에 엮이게 된 필리포스는 기원전 217년 6월에 트라시메노호 전투에서 한니발이 로마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리포스는 처음에 데메트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마 왕국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에, 데메트리우스는 즉시 젊은 왕에게 아이톨리아와 화해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고, 그의 관심을 일리리아와 이탈리아로 돌렸다. 폴리비우스는 데메트리우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 그리스는 이미 당신에게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애정을 가진 아카이아인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재난이 가져온 두려움을 가진 아이톨라이인 모두 말입니다. 당신의 개입으로 이탈리아는 보편적인 제국을 획득하는 첫 단계입니다. 그것에 대해 아무도 당신보다 더 나은 주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역경을 겪고 있는 지금이 행동할 순간인 것입니다.[3]
필리포스는 쉽게 설득당했다.[4]
아이톨리아 평화조약
필리포스는 아이톨리아와의 협상을 즉시 시작했다. 나우팍투스 근처의 해안에서 개최된 회담에서 필리포스는 아이톨리아의 지도자들을 만났고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5]
필리포스 함대
기원전 217년 겨울부터 216년까지 필리포스는 100척의 전함 함대를 건조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데 시간을 보냈다. 폴리비우스는 그것이 “이전의 마카도니아 어떤 왕도 하지 못했던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다.[6] 마케도니아니는 로마에 필적할 만한 함대를 만들고 유지하기엔 자원이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었다.[7] 폴리비우스는 필리포스가 “바다에서 로마와 싸울 수 있는 어떤 희망도 없다”[6]고 말했는데, 이것은 경험과 훈련 부족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필리포스는 렘버스를 건조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 배는 당시 일리리아 인들이 사용하는 소형의 쾌속 갤리선이었다. 이 배는 1열의 노 거치대가 있고, 사공들 외에도 50명의 병사를 수송할 수 있었다.[8] 이것만으로도 필리포스는 로마 함대를 회피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시칠리 서부의 릴리바에움에서 기지를 건설하고, 그가 의도한 대로 한니발과 선점을 할 수 있었다.[6]
같이 보기
각주
- ↑ Polybius, 2.11.
- ↑ Polybius, 3.16, 3.18–19, 4.66.
- ↑ Polybius, 5.101.
- ↑ Polybius, 5.102.
- ↑ 폴리비우스, 5.103–-105.
- ↑ 가 나 다 폴리비우스, 5.109.
- ↑ Walbank, p. 69; 폴리비우스, 5.1, 5.95, 5.108.
- ↑ Wilkes, p. 157; Polybius,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