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병합 조약 체결을 지지하는 많은 친일 단체들이 활동했는데, 이용구의 일진회와 이완용의 국민연설회가 경쟁 관계에서 활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완용과 조중응 계열에서는 민원식, 정응설, 정달영, 강중원, 고희준 등이 한일 친선을 표방하면서 국민연설회의 후신 격으로 정우회를 발기했다. 발기 취지는 국시유세단을 지원하는 정치단체였다. 총재는 민영휘와 김종한 등이 맡았다. 회원 수는 언론을 통해 150명으로 알려졌으나, 명의 도용 등으로 이름만 올린 경우가 드러나 실제 회원은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해 8월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목표가 달성되면서 9월 12일에 결사해산령에 따라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