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으로 1969년 당시(만28세 시절), 큰외숙부 장하오뤄(章浩若(장호약), 1916~1969)의 상(喪)을 목도한 그는 1971년 자오선더(趙申德, 조신덕)[2]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 1남 1녀(맏아들과 막내딸)를 두었고, 애초부터 그는 장샤오옌(쌍둥이 형)과 모두 함께 아울러 이미 일찌감치 장징궈의 쌍둥이 아들로 인정됐으나 러시아 출신이자 장징궈의 본처(아버지 장징궈의 계배 본부인)였던 장팡량(蔣方良)의 강력한 반대로 인하여 부친의 성이 아닌 모친의 성을 계속 쓸수밖에 없었고 그 후 모교인 둥우 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으며 그 후로는 잠시 중화민국(타이완)의 타이베이(臺北)를 떠나 영국령 홍콩을 통하여 1994년11월 14일 당시에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대륙 본토)의 수도 베이징을 방문하던 중 뇌출혈이 발병하여 중화민국(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로 귀환하였고 요양 중 1996년2월 24일을 기하여 병사(사망)하였다.
사망 직후
1996년 2월 26일, 병사한 故 장샤오쯔(章孝慈, Winston Chang) 전직 교수 그의 상중(喪中)의 2일차 빈소(殯所)에서 고인의 큰외숙모 지천(紀琛(기심), 1919~2006) 여사께서 시생질(媤甥姪)인 故 장샤오쯔(章孝慈, Winston Chang) 전직 중화민국 둥우 대학교 총장 그의 병사를 비통해하며 오열하다가 상중(喪中)에서 잠시 혼절 실신하는 등 외숙모 지천(紀琛) 여사 그녀 자신의 친가 경조사(親家 慶弔事)처럼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