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리스 매더(영어: Increase Mather; 1639-1723) 매사추세츠주 도체스터에서 출생하였고, 까다로운 청교도 아버지인 리차드 매더의 아들로 자랐다. 12살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1656년에 졸업하였다. 영국으로 건너가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석사학위를 수여받고, 왕정복고전까지 영국에서 설교를 하였다. 1661년에는 다시 보스톤으로 와서 6개의 교회에서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한 뒤 아버지와 함께 도체스터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 뒤, 존 코튼의 딸인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7명의 딸과 세명의 아들을 낳았다. 세명의 아들 중에 나다니엘은 19살에 사망하고, 코튼과 사무엘은 목회자가 되었다. 그는 중도언약을 반대하였고, 그 이유는 그것이 회중교회를 약화시킨다는 이유였다. 1683년 초, 그는 영국 학사원을 모방하여 보스톤 철학회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