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3월 23일함경북도회령에서 태어났다. 1918년 회령신흥보통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그는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청진 형무소에서 징역 6개월을 복역하였다.
1921년에는 북간도 명동중학을 졸업했으나 1923년 대한독립군 활동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청진 형무소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이후 1927년나운규의 영화 《들쥐》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으며, 1930년에는 《도적놈》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고, 1941년까지 영화 배우를 겸업했다.
1942년까지 작품 활동을 해 왔던 그는 친일 단체인 조선영화인협회의 가입 제의를 받자, 이를 거부하고 1945년에 해방될 때까지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1945년 광복 후 활동을 재개한 그는 《윤봉길 의사》, 《유관순》, 《고향의 노래》, 《다정도 병이런가》, 《영원한 내 사랑》, 《인생대학 일년생》 등의 영화를 연출하였으며, 1963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75년에 노환으로 숨졌다.
1993년 8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생전 죽마고우였던 故 나운규와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