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이중선(李仲宣)은 고려에서 안성군의 호장(戶長)을 지내다가 경군(京軍)으로 선발되었다.
이중선의 아들인 이영(李永)이 고려 숙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1122년 인종이 즉위하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에 이르렀으나, 이자겸이 한안인을 죽일 때 한안인의 매서(妹壻)라는 연유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사후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에 추증되었다.[1]
3세 이원장(李元長)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합문부사(閤門副使) 이구(李玖), 이사정(李思正)을 중시조로 하는 파로 갈라졌다.
이사정의 손자인 이숙번(李叔蕃)이 1393년(조선 태조(太祖) 2년) 과거에 급제한 후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서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병조판서, 의정부찬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