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생년은 알 수 없으며, 희종과 성평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성은 왕(王), 본관은 개성, 이름은 의(禕)이다.
1211년(희종 7년) 음력 4월 27일 검교태위 수사도 상주국 시령후에 책봉되었다[1]. 그러나 이 해에 부왕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다 도리어 발각되어 폐위되고 강화로 유배되면서, 시령후도 백령도로 유배되었다. 또 이 때 시령후의 여러 형제들도 각각 다른 섬에 유배되었다[2].
한편 시령후의 사망 시기나 아내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아들 왕굉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혼인을 했던 것만은 확실하다[3].
가족 관계
부왕 : 고려 제21대 왕 희종 (熙宗, 1181년~1237년, 재위:1204년~12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