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년루이 14세의 손자이자 도팽 루이 (그랑 도팽)의 장남 부르고뉴 공작 루이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금슬이 좋았고, 세 명의 아들을 두었다. 1711년, 시아버지 도팽 루이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자 마리 아델라이드의 남편 루이는 프랑스의 왕태자가 되었다.[2] 그러나 이듬해 천연두(또는 홍역)로 2월 12일 마리 아델라이드가 죽고, 2월 18일에는 남편 부르고뉴 공작 루이가, 3월 8일에는 부부의 장남 브르타뉴 공작 루이가 차례로 죽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루이는 훗날 루이 15세로 즉위했다. 루이 15세의 딸 마리 아델라이드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