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미국의 힙합 그룹이다. 래퍼는 Mike D, MCA, Ad-Rock 3명, DJ는 Mix-Master Mike이다. 1979년 'Young Aborigines'라는 이름의 하드코어 펑크 그룹으로 시작했으며, 1981년에 팀 이름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984년에 힙합 장르로 전환했다.
경력
1981–1983: 결성과 초창기
비스티 보이즈는 1978년 결성된 펑크밴드 'Young Aborigines'가 전신이 되는 그룹으로써 1984년이 되기 전까지는 펑크 밴드로 활동하였다.
멤버 수는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는데 처음에는 베이스:아담 요크(영어: Adam Yauch), 드럼:케이트 쉴렌바흐(영어: Kate Schellenbach), 보컬: 마이클 다이아몬드(영어: Michael Diamond), 기타: 존 베리(영어: John Berry)로 이루어져 있다가 존 베리 가 탈퇴 후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애드 락 (Ad-Rock) 이 비스티 보이스와 친분이 높아 새 기타리스트로 들어온다.
그러다 드러머까지 빠지며 3명의 멤버만 남았을 때 데프잼 레코드에서 프로듀서를 맡고 있던 릭 루빈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처음으로 싱글 'Rock Hard'를 녹음 후 발표한다.(데프잼 레코드는 이로 인해 더 유명한 회사가 되었다.)
1984–1987: 데프잼과의 계약 그리고 Licensed to Ill
1984년 싱글 'Rock Hard'의 발매 이후 주목을 받은 그들은 1985년 경 힙합 음악을 다룬 영화에 들어갈 노래인 'She's On It'을 발표한다. Krush Groove에서 이 노래를 처음 선보였는데 큰 주목은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1986년 1집 Licensed to Ill 이란 앨범을 발표하고 힙합 가수로써의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1집 앨범이 처음 나왔을 당시는 많은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1집 앨범 1번 트랙인 'Fight For Your Right'이 인기를 얻으면서 앨범의 인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몇 달도 채 안 돼서 그들은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한다.
1집의 성공으로 이들은 힙합계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고,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동료인 런 디엠씨와 함께 런던에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올 당시에 런던이나 유럽 지역에서는 이들이 오는 것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또, 비스티 보이즈가 클럽 파티 당시 난동을 피웠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1988–1989: 캐피털 레코드로 이적 그리고 Paul's Boutique
1989년에는 데프잼과 관련한 여러 경제적 갈등과 소송 등으로 인해 소속사를 캐피털 레코드로 옮기고 2집 앨범 Paul's Boutique를 발매했다. 2집 앨범은 조금 더 힙합 그룹 다운 면모를 보이기 위해 Shadrach, Shake Your Lump, High Plains Drifter 같은 올드스쿨 풍의 노래들을 대부분 수록하였다.
1992년에는 3집앨범 콘서트로 일본과 미국 등에 있는 여러 지역에 콘서트 투어 (Check Your Head 투어)를 다니기도 하고, 영국에서 열린 'Reading Festival'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또한 비스티 보이스의 자사 레이블인 '그랜드 로얄'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1993년까지 이어졌으며 1993년에는 4집 앨범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1993년에서 1994년까지 4집 앨범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1994년5월 비스티 보이스의 4집 앨범 Ill Communication 이 발매된다. 4집역시 3집보다 더 많은 장르의 곡들을 샘플링하였었는데 재즈 연주가 Jimmy Smith의 'Root Down' 을 샘플링 하여 랩을 붙여서 힙합 풍으로 편곡하기도 하였고, Jeremy Steig의 'Howlin' for Judy'라는 플루트 연주곡과, 런 디엠씨의 'Rock The House', Spoonie Gee의 Spoonin' Rap 등 여러 곡을 샘플링 하여 'Sure Shot' 이란 곡을 만들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많은 인기를 얻어 1994년 개최된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후보로 여러번 거론되었으나 무관에 그쳤다. 이들은 4집앨범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다.
비스티 보이스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Ill Communication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투어를 하는 동안 미국의 롤라팔루자 페스티벌과,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투어를 하는 동안 1996년에 항상 티베트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보이던 멤버 Mca가 티베트의 자유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락 페스티벌 티베탄 프리덤 콘서트를 직접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퍼커셔니스트가 'Eric BoBo'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이름은 Alfredo Ortiz이다.
2007년에는 The Mix-Up 투어 콘서트를 열게 되고, 기한은 2008년까지 이어졌다. 이 앨범은 비스티 보이스에게 2008년 열린 그래미 상에서 최우수 팝 연주 앨범상을 안겨 주었다.
2008년~2009년까지는 7집 앨범 작업에 돌입하며 콘서트를 열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에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하려했으나 멤버 Mca의 침샘암 발병으로 인해 공식사이트에서 앨범 작업을 미루게 됐다고 얘기를 하고 활동을 중단한다. (원래는 롤라팔루자에도 참석하려 했으나 Mca의 암투병으로 인해 취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항암 치료를 하던 Mca가 2011년에 비스티 보이스 앨범 작업에 돌입하며 2011년 7집 앨범이 나온다.
그리고 2012년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하지만 헌액 당시 Mca가 침샘암이 갑자기 악화되어 참석을 못하게 되고 팬들의 걱정을 사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5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2012년 Mca의 죽음으로 비스티 보이스의 활동은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