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중국어간체자: 白莲教, 정체자: 白蓮敎, 병음: Báiliánjiào)는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중국의 밀교다. 구세주 명왕(明王), 즉 미륵의 도래를 기다린다.[1] 이후 종교가 발전하면서 무생노모라는 여신을 숭배하게 되었다.
기원
백련교의 종교적 배경은 402년 려산동림사의 정토종 승려 혜원이 백련사(白蓮社)를 만든 것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북송 시대에 남중국 곳곳에 백련사의 지부들이 퍼져나갔다.[1] 9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중국 정토종은 명교(마니교)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2] 종내에는 너무 밀접하게 결합해서 불교와 명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습합했다.[3]
12세기에 모자원(법명 자조[慈照])이 각지에 흩어진 백련사들을 규합하기 위해 백련종(白蓮宗)을 세웠고, 연참당(蓮懺堂)을 지어 거기서 백련종의 가르침을 설파하니 이것이 백련교의 기초가 되었다.[1] 백련교는 불교와 명교의 혼합종교로서 구세주의적 미륵신앙과 채식주의를 강조했다. 남자와 여자가 자유로이 교제할 수 있게 해서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4]:94
역사
백련교의 교리는 현세의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추구하는 일종의 메시아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창세주인 무생노모(無生老母)가 미륵을 이 세상으로 보내서 자신의 흩어진 자녀들을 거두어들여 '진공가향'(眞空家鄕)이라는 일종의 천국에 귀의시키고 평화로운 천년왕국이 인간세계에 실현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백련교도들은 불교식으로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리는 한편 새로 올 왕국을 대비하며 무술 수련도 하였다.
백련교는 중국 역사에서 두번 큰 역할을 하는데 첫 번째는 14세기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질 때 이른바 홍건적의 난의 사상적 기원이 되었다. 명의 태조 주원장도 백련교도로 출발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명을 세웠다.
두 번째는 18세기 말 청나라에서 일어난 무장반란인데 이 때도 이민족인 만주족의 지배에 대항하여 한족을 중심으로 저항하는 세력으로 청나라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에도 백련교도는 여러차례 청나라에 반대하는 비밀결사로 조직되었고 나중에 의화단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Yar, Char (2012). Monijiao (Manichaeism) in China (연설). Lecture presented at the Worldwide Conference for Historical Research. academia.edu (Beijing).
↑Teng, Ssu-yü (1958). “A Political Interpretation of Chinese Rebellions and Revolutions”. Tsing Hua Journal of Chinese Studies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