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이치로(일본어: 水木 一郎, 1948년1월 7일 ~ 2022년12월 6일)는 도쿄도 출신의 남성 가수, 작사가, 작곡가, 성우, 배우이다. 옐로 버드(イエローバード)소속이다. 본명은 하야카와 토시오(早川俊夫)이다. 또, 다른 이름인 '마츠모토 시게유키', '야마모토 이치로', '미즈킹'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남성 애니메이션 가수로서 애니메이션이냐 실사물이냐에 관계 없이 사사키 이사오(佐々木功)나 시몬 마사토 등과 함께 대부분의 주제가, 삽입곡, 엔딩곡을 노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명도가 있었다.
당시 애니메이션 송이 5만 장 정도 팔리면 히트물로 취급되었는데, 그의 애니메이션 송은 평균 10만 장 정도 팔렸으며, 1972년, 《마징가Z》의 주제가 음반은 70만 장이 판매되었다. 1978년 《캡틴 하록》의 주제가 앨범은 초판이 15만 장 팔렸는데, 이는 당시 애니메이션 송으로는 경이로운 판매 수치였다. 계속해서 동년 4월에 출시된 《캡틴 하록》테마 송에서는 이례적으로 68명의 교향악단이 동원되었다. 1982년에는 레코드 등의 총 판매량이 700만매 이상이라고 하는 기록을 수립하면서 당시 《애니메이션 송의 제왕》으로 불렸으며(덧붙여서 《애니메이션 송의 여왕》은 호리에 미츠코), 《애니메이션 송》의 약칭인 《애니송》과 앞에서 서술한 그의 애칭 《아니키》를 합친 《아니존》이라고 하는 CD도 발표했다. 그러나 시몬 마사토, 사사키 이사오, 호리에 미츠코, 미즈키 이치로의 4명 중에서, 유일하게 미즈키만 밀리언 셀러를 내지 못했다.
애니메탈 등을 통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 왕년의 애니메이션 송(애니송)이 재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0년대 즈음부터 "21세기에 한때의 애니송을 노래해 잇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호리에 미츠코, 카게야마 히로노부, 사사키 이사오 등과 함께 콘서트를 계속 개최했으며, 옛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SF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중심으로 노래하고 있다.
당시,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수로서의 원점이기도 한 아메리칸 팝스도 불렀다. 후에 그것을 안 히라오 마사아키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올 것을 요청해,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oldies를 노래한 적도 있다. 또, 애니메이션 관련 일은 아니지만, 1976년 4월 - 1979년 3월에는 NHK의 어린이 프로그램 《오카아산토잇쇼》에서 노래 형님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1983년1월에는 1982년 공개된 "로만틱아게인"(Romantic Again, 코믹 《에로이카의 사랑을 담아서》이미지 송)로 콜럼비아 골든 디스크상과 골든 LP테이프상을 수상하였다.
1986년 4월부터 1987년 3월까지 방송한 도에이의 메탈 히어로 특수촬영물 《시공전사 스필반》에서 주제가를 노래하는 것과 동시에 주인공인 스필반의 부친인 "벤 박사"를 연기하였다.
"샤우팅"계 애니메이션 송이 주목을 받아, 미즈키 이치로의 첫 베스트 앨범 《OTAKEBI 방문! 외치는 남자 미즈키 이치로 베스트》(OTAKEBI参上! 吠える男 水木一郎ベスト)를 1989년 6월에 공개했다. 코사카이 카즈키, 세키네 츠토무 두사람의 라디오 프로그램 "코사킨 무리하게100%"를 시작으로, 미즈키 이치로의 "샤우팅" 붐은 한층 더 퍼지게 되었다. 1990년5월에는 새로운 앨범 《미즈키 이치로 OTAKEBI2》(水木一郎OTAKEBI2)를 공개하였으며, 이 앨범에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니메이션 및 특수촬영물의 주제가를 수록했다. 동년의 11월에는 그 중에서 애니송 17곡 메들리 《그리운 히어로~I'll Never Forget You!~》을 싱글 컷 발매하였다. 또, 1990년 9월 1일부터 1992년 8월 21일에 걸쳐 《미즈키 이치로 대전집》(水木一郎大全集)Vol.1-5를 발매하는 등, 수많은 작품집을 발표. 이후, 1992년에 24곡 메들리 《그리운 히어로 PartII~We'll Be Together Forever!~》, 1994년에 청춘 드라마 주제가 메들리 《SEISHUN FOR YOU~청춘의 노래~》를 발표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고, 근래에는 일본어 그대로 부르는 애니메이션 송도 많기 때문에, 해외에서 열리는 콘서트에도 가고 있다. 또, 노모 히데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주니치 드래건스의 응원가도 노래하고 있다.
새로운 비약을 위해서 1997년3월을 말일로서 일본 콜럼비아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면서 프리랜서가 된다. 동시에 프리랜서 선언 후 첫 앨범 《슈퍼 로봇 대전 보컬 콜렉션》(퍼스트 스마일 엔터테인먼트)이 오리콘 23위를 기록하였다. 동년 4월에는 애니메이션 송을 21세기에 남겨야 한다는 생각 아래 미즈키 이치로를 필두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송 계를 담당해 온 가수들이 아카사카 BLITZ에 집결하였다.
게임 소프트 《슈퍼 로봇 대전 시리즈》의 팬이자 헤비 플레이어로 유명하다. 신작 소프트의 발매 후에는 게임 잡지에 칼럼을 집필하는 일을 한 적도 있다. 플레이 시에 주로 사용하는 로봇은 자신이 주제가를 노래한 작품의 로봇인 슈퍼 로봇이 대부분이다. 《제3차 슈퍼 로봇 대전α 종언의 은하로》에서는, 모든 로봇의 BGM를 《마징카이저》로 설정해 플레이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3차 슈퍼 로봇 대전α》에서는 최종 보스인 《케이사르 에페스》의 소리를 스스로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2007년에 출시된 '슈퍼로봇 대전 스크램블 코맨더 - the 2nd'의 CM에 모델로 나오기도 했으며 최신작인 《슈퍼 로봇 대전 Z》에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98년 4월에는 분카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 슈퍼 로봇 스피리츠》방송 개시. 퍼스낼러티를 맡는다.
1999년 8월 30일부터 31일에 걸쳐, 애니송 프로그램 《쾌진격 TV우타에몽》의 기획으로서, 야마나시 현의 가와구치코 스테라 씨어터에서 〈24시간 1000곡 라이브〉[1]를 완수했다. 당시 생방송 종반까지 변함없는 소리의 영향에 "정말로 24시간 계속 노래했는가"를 묻는 전화가 프로그램에게 쇄도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2001년2월 2일에는 〈홍콩 캐릭터 진열장 2001〉이라고 하는 라이브를 펼쳤다. 패션잡지, 예능잡지 등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매체로 기사가 짜여져, 현지에서의 관심의 깊이를 알게 된다.
동년 10월에는 테레비 아사히의 프로그램 《투 나이트 2》에 출연하여, 〈우리들의 아니키 미즈키 이치로의 영혼!!〉이라는 대특집에서, 통상의 2배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또한 NHK의 소년 드라마 《요리소년 K타로》에 동시 출연하여 극중에서도 오페레타를 방불케하는 대열창을 보여주었다. 프로그램 주제가의 〈열, 괴로운 거야〉(熱くるしいぜ)를 11월에 발표하였다. 애니송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아니키 자신》(アニキ自身)과 동시 발매되었다.
2002년 3월에는 텔레비 아사히의 프로그램 《테츠코의 방》에 2번째로 출연하였다. 동월에 미즈키 버전으로 수록 한 주니치 드래건스의 응원가 〈타올라라 드래건스!〉(燃えよドラゴンズ!)가 개막과 함께 나고야 돔에서 흐른다. 동년 6월에는 나고야 돔에서 시구식을 실시해, 스탠드의 관객과 함께 〈타올라라 드래건스!〉을 대합창하였다.
의외로 2007년초에 〈모두의 노래〉와 〈슈퍼 전대 시리즈〉(삽입곡은 그동안 몇 차례 불렀지만 주제가는 처음)의 노래를 불렀으며 국내에서는 2008년 1월, 기타다니 히로시와 함께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2008년 1월 6일에는 그의 60번째 생일인 1월 7일 이전에 水木一郎 SUPER LIVE 60(미즈키 이치로 Super Live 60)를 진행, 4시간동안 자신이 지금까지 부른 곡들 중 60곡을 메들리로 불렀으며 같은해 7월 21일에는 그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水木一郎 デビュー40周年記念ライブ~道~(미즈키 이치로 데뷔 40주년 기념 라이브~길~)이란 콘서트를 가졌다.
가수가 되기 전
친가는 레코드 가게를 경영하였으며, 재즈 등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미국의 음악에는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당초 "어차피 일본인이니까 만담이나 할까"라고 생각하여 만담가를 목표로 하였으며, 학생시절에는 '만담회'를 열고 있었다고 한다.(도에이 히어로 MAX의 인터뷰에서 참고) 원래부터 애니송을 지망한 것은 아니고 보통 가수로서 나가기 위해 온갖 방향으로 노래를 배웠다. 여담이지만 미즈키 이치로씨는 노인보호센터를 방문해,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들려주는 일도 참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