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金奎東, 1925년 2월 13일~2011년 9월 28일[1])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인물
1925년 함경북도 출신 시인으로 1948년에 스승 김기림 시인을 찾아 단신 월남하여 교사, 언론인, 출판인으로 활동하고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썼다.
50년대에는 박인환-김차영-조향-이봉래-김경린과 함께 ‘후반기’ 동인을 결성해 음풍농월식 서정 기조의 기존 문단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고 이후 전후 문학의 흐름을 이끌었다.
쉬르레알리즘에 경도하여 시론을 저술하고 영화 평론에도 적극 참여했다.
70, 80년대에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이후 민중의식에 근거한 리얼리즘과 민족통일 지향의 시를 통해 재야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80세에 마지막 시집을 내고 통일의 날을 기다리던 시인은 북에 홀로 남기고 온 모친을 그리며 2011년 9월 타계했다.
생애와 시작 활동
생몰
1925. 2. 13. - 2011. 9. 28.
출생지
함경북도 종성군 행영읍 행영리
활동
부친이 의사인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학교를 졸업한 부친 슬하에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함북 경성고보를 거쳐 연변의대와 평양종합대학(현 김일성대학교) 조선어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경성고보 시절 영어교사였던 시인 김기림의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경성고보 동문으로는 영화감독 신상옥, 시인 이활, 의사 김규천 등이 있다.
1948년 『예술조선』에 시 「강」을 발표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을 결성했다. 후반기는 後半期 또는 后半期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의미하는 대표 시어였다. 그는 후반기 동인 활동을 통해 ‘우리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니다. 우린 모더니즘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정치에 있어서 여운형 선생 같은 인격의 보유, 문학에 있어서 김기림·정지용 같은 진보적 시인이 보여준 예술성의 고수를 중시하여 문학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세계문학과 같이 가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한 모더니스트였다.
시작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후반기 활동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시기이다. 『나비와 광장』과 『현대의 신화』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더하여 한반도의 전쟁이 가져온 불안과 절망을 묘사하고, 그 상황 안에서 희망의 징표로 삼아야 할 지적 신화를 제시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스승인 김기림의 인식과 비판이 세계사적인 전망 아래서 이루어진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었다면, 김규동의 시적 모색은 좀 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관찰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뉴스는 눈발처럼 휘날리고」, 「보일러 사건의 진상」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과 도시, 서구문명, 역사와 현실의 본질을 분석적으로 다루면서도 예리하고 독특한 감성이 수반된 시들을 발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변모를 보이는데 이 두 번 째 시기의 문학적 추구는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생명의 노래』(1991), 평론집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더니스트로서의 특질을 지닌 채 리얼리즘의 세계에 새롭게 접근한 『죽음 속의 영웅』은 지식인의 운명적 고뇌를 초극의 의지와 함께 표현했다. 김규동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국민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97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에 임하는 등 독재가 강화되어가는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자유인이었다. 이후 그의 시는 통일, 어머니, 민주·민중, 노동, 종교 등의 주제로 민족의 현실적인 고통을 형상화했다. 문학의 사상성을 통해 내외의 변혁을 기도하는 사회개조적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나온 시인의 시집 『느릅나무에게』(2005)는 그의 세 번 째 시작 여정을 보여 준다. 김규동은 디아스포라의 시인으로서 민족분단의 고통, 극복의 의지, 정신의 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년의 깨달음과 결합하여 잔잔히 기록했다. 그는 『느릅나무에게』를 통해 젊은 시절 주목했던 사상성과 예술성을 시의 신화 안에서 재결합하는 원숙미를 보여줬다. 『느릅나무에게』에 수록된 「어머니는 다 용서하신다」, 「느릅나무에게」, 「육체로 들어간 진달래」, 「역사」, 「그날에」와 같은 작품들은 민족, 고향과 모성, 사랑, 시대정신을 노래하면서 기억과 영탄에 그치지 않고 모더니스트다운 점검과 정신적 도전으로 자신의 ‘문학문명’에 관한 인식을 전하고 있다.
시인이 남긴 주요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하나의 세상』(1987), 『길은 멀어도』(1991)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타계 몇 개월 전, 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에서 발간되었다. 평론 활동을 병행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저술을 냈으며, 산문집 『어머님전 상서』(1987), 『시인의 빈 손』(1994)과 만년 병상에서의 구술을 통해 작성된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도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