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같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김정일(1942년 ~ 2011년)과 김만일(1944~1947년)의 여동생이다. 남동생 김만일이 일찍 익사한 뒤 하나 뿐인 친동생이라는 점에서 김정일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 장성택과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같이 경제학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때는 김경희는 前 남편 장성택과의 불화설과 첫째딸 장금송이 2006년 프랑스 유학 중 부모의 결혼 반대 문제로 고민하다가 자살한 일[2] 등이 겹치면서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울증 치료도 받았다.
공직
1987년에 당 경공업 부장으로 취임했고, 1990년 이후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10월에 공식 보도에서 당 중앙위 부장이라는 직함으로 등장한 이래, 13년 동안 그녀의 동정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2009년 6월 8일의 조선중앙방송 등의 보도로, 김정일 총서기의 김원균평양음악대학 시찰에 남편 장성택과 함께 동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의혹과 논란
배우자인 장성택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고사포 처형에 처해진 뒤부터 그녀의 모습이 매체에 드러나지 않아 많은 의혹을 증폭시키는 중이다.
건강악화설
김경희는 일찌감치 남편인 장성택과의 불화설 마약설 등에 휩싸여오다가 지난 2000년대 중반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2009년 복귀한 이후에도 꾸준히 건강악화설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난 2013년 2월 23일부터 혼수상태로 회복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28일 “김경희가 간경변에 간복수까지 겹쳐 갑자기 쓰러지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며 “현재 북한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선 이번에 김경희가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3]
사망설
김경희가 지난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에 의해서 장성택이 처형 됨에 따라 분을 이기지 못하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 했다고 한 탈북자가 북한 내부소식통의 말을 빌려 말했다. 세부적으로는 김경희가 죽은 지 거의 1년이 지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기준. 이는 그녀가 지금까지 북한 관영 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주며, 지난 4월 북한 당국이 만든 다큐멘터리 재방송에서 김경희가 등장한 부분이 편집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2주 뒤 방영된 또 다른 재방송에서는 김경희가 다시 등장한 바 있다.[4]
많은 의혹속에 김경희가 최근 죽었을거라는 추측도 많았지만 대한민국국정원은 국정감사회에서 김경희가 2015년 현재 생존해있다 밝히며 논란을 일축시켰다.[5]